흐렸다가 갬ㅣ갑자기 많은 일이 한꺼번에.....(8-05-Fri)
요 며칠 갑자기 많은 일거리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풍물대축제 인사말, 재단부서평가서 작성, 지하철 스크린도어 게재시 심사, 기호일보 금요칼럼 원고, 미추홀구 인권 관련 작품 심사, 후배에게 부탁받은 미팅 건, 아버지 기일 등등 해결해야 할 일이 한꺼번에 밀려든 것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일들이 많다는 건 일단 기분좋은 일이지만, 일들 사이의 시차가 넉넉하지 않아 걱정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느슨하게 풀어진 의식의 고삐를 바짝 당겨쥘 수 있다는 점에서는 다행스럽기도 하다. 나는 뭔가에 집중할 때 가장 대견하고 아름답다. 비단 나뿐이겠는가.
아무튼 자꾸만 풀어지려는 의식을 긴장하게 만드는 데는 바쁜 일정 만한 것이 없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잡생각도 없어지고, 어수선했던 머릿속이 정리되기도 한다. 게다가 의뢰받은 일들 대부분은 그 일에 합당한 대가를 받는 것들이니, 경제적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없어 고민이지 있다고 고민할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나는 일이 많아 푸념한 게 아니라 자랑한 것이군. 내 친구들 중 상당수는 퇴직을 한 후 일이 없어 영화나 텔레비전을 보면 시간을 죽이고 있는 중인데, 그래도 나는 직장도 있고, 일거리도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니 자랑할 일이긴 하다.
물론 그 친구들은 엄청난 퇴직금에 연금까지 받게 되어 있어 노후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처럼 사기를 당해 (의도적인 사기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전 재산을 잃고 다시 시작하는 사람과는 비교도 안 된다. 그러니 영화나 보고 등산이나 다니며 시간을 죽여도 딱히 걱정할 게 없는 친구들이다. 내가 그 친구들에 비해 나은 게 있다면 (물론 이건 주관적이긴 하지만) 일상이 무척 다채로워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살고 있다는 점인데, 여기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영화 속 주인공이 늘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되지 않는다는 점. 그러나 권태로운 삶보다는 버라이어티한 삶이 재미있긴 할 거다.
혼자 살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도 친구들이 무척 부러워하는 점인데, 그것은 그들이 혼자 사는 삶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의 떡(조건)이 크고 맛있어 (좋아) 보이는 게 인지상정이니까. 내가 더불어 사는 그들의 삶을 부러워하는 정도와 그들이 나를 부러워하는 정도를 비교하면, 그들 쪽의 부러움이 큰 건 사실이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더 나이가 들어 병들고 지치면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같이 사는 사람을 그런 유용성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건 옳지 않다. 함께 사는 가족 구성원 사이에 한결같은 사랑과 믿음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혼자 사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사랑이 없는 관계는 부담이고 질곡이며 마음의 병을 키우는 근원이다. 그런 점에서 아내와의 관계를 물었을 때, 친구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랑은 무슨.... 정으로 사는 거지"에서 '정'은 말 뜻 그대로의 정(情)을 의미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굳이 바꿔 말하면 무관심, 무덤덤함이라고 할 수 있겠지.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말 뜻 그대로의 정이나 사랑이 없다면 혼자 사는 게 낫다는 게 혼자 오래 살아 본 나의 결론이다.
오늘 점심은 혼자서 먹었다. 혼자 먹는 점심이라 늦게 먹었다. 오랜만에 뒷문 쪽으로 나가서 '정가네 식당'의 순두부를 먹었다. 안 가는 사이에 500원이 올라서 밥값은 9,500원이었다. 순두부는 괜찮았지만, 기본 반찬이 별로여서 가격 대비 가성비는 높은 편이 아니다. 7천 원 정도면 적당하다는 생각이다. 심지어 소주 값도 4,500원, 막걸리도 4,000원, 단골집 갈매기보다 천 원이나 비쌌다. 사실 요즘 다른 집도 대부분 술값이 올랐다. 그래도 갈매기는 술값을 올리지 않고 단골과의 의리를 지키는 중이다. 청사에서 식당까지 5분 남짓 거리인데,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는 온몸이 땀범벅이 되었다.
그런데.... 아뿔싸! 자리에 앉아 주머니를 살폈더니 카드가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 잃어버려 재발급한 카드라서 짜증이 엄청 밀려왔으나, 미처 땀을 식힐 여유도 없이 왔던 길을 되밟아 식당까지 가서 주인에게 다시 확인을 받은 후, (주인에게 카드를 받은 기억은 또렷했지만, 혹시 주머니에 넣다가 식당 바닥에 떨어졌나 싶어서) 눈을 부라리고 주위를 살피며 청사로 돌아왔다. 동선을 그대로 밟아 왔으나 눈에 띄지 않았다. 허탈한 심정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짜자잔~! 청사 쪽 횡단보도 끝자락, 불타는 도로 위에 망할 놈의 카드가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얼른 집어들고 이곳저곳 살폈더니 다행히 상처난 곳은 없었다. 특히 인도에 떨어졌으면 누군가 집어가거나 쓰레기통에 버려졌을 텐데, 차들이 씽씽 달리는 도로 위에 떨어져 나에게 발견된 것이다. 달리는 차 바퀴에 깔려 망가지지도 않고, 또 차가 달리며 내는 바람에 날아가지도 않은 채 횡단보도 위에 다소곳이 떨어져 있는 카드가 얼마나 기특하던지, 너무 기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오늘 입고 온 바지에서만 벌써 세 번째 탈출이다. 카드와 오늘 입은 마바지와는 상극인 모양이다. 어쨌든 기분 좋았다. 영영 잃었다고 생각했던 물건을 되찾았을 때의 기쁨, 말해 무엇하겠는가.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