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다 갬 : 남방을 사야겠는데...... (8-01-Mon)
출근할 때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오전 10시쯤 완전히 그쳤다. 젖은 대지가 한낮의 땡볕을 만나 내뿜는 습기로 인해 길을 걸을 때 숨이 턱턱 막혔다. 그늘이 있는 길만 찾아 걸어도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 없었다. 교육감과 비서실장이 휴가 중이라 청사의 8월은 고즈넉하게 시작되었다. 점심 식사 후에는 재계약 관련 서류를 총무과에 보내고, 마감을 넘긴 시선집 원고를 정리해 작가회의 후배에게 보냈다. 좀처럼 마감 넘기는 법이 없었는데, 요즘은 기록하지 않으면 쉽게 잊는다. 오늘은 새벽 4시에 간신히 잠들어 아침 7시쯤에 잠이 깼다. 절대적인 수면량이 부족하다 보니 오후에는 서너 번 졸았다. 뭔가를 하려고 생각을 모으면 그때마다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커피를 마시고, 보운 형이 사다 놓은 박카스를 마시며 졸음을 견뎠으나, 오후 두 시쯤에는 의자에 기대 서너 번 선잠을 잤다. 그런 깜빡잠이 의외로 컨디션을 좋게 만들었다. 담배 멤버인 실장이 휴가라서 다른 때보다 담배는 적게 피웠다. 옥상은 에어컨 실외기가 내뿜는 열기로 사우나실을 방불케 했다. 다른 때보다 흡연하는 사람이 현저하게 적었다. 달궈진 옥상 바닥과 실외기가 내뿜는 열기를 견디며 담배 피우는 일은 그야말로 사서 고생하는 걸 테니.....
다육이 화분 하나가 잎을 떨구며 모로 누워버렸다. 물을 너무 많이 줘서 그런 건지 어떤 건지 알 수 없지만, 마음이 아팠다. 남은 줄기들은 여전히 살아 있는 것 같아 얼른 나무젓가락을 지지대 삼아 일으켜 주었다. 잎을 잃어 홀쭉해진 줄기가 힘없이 젓가락에 기댄 채 다시 일어섰다. 화초마다 '사랑법'이 다를 텐데, 그것을 간과하면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것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사랑도 상대의 성정을 정확히 알아야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사람이나 화초나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남방을 한 벌 사야겠다고 맘먹고 있었는데, 너무나 맘에 드는 재질과 디자인의 남방을 후배 장학사가 입고 있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최근 50% 할인해서 8만1천 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그는 아마도 16만 넘게 주고 구매했을 것이다. 앞에 포켓이 있고, 달마시안이 수놓아진 예쁜 남방. 볼수록 맘에 들었다. 구매한 지 무척 오래되었다고 하는데, 비싼 남방이라서 그런지 여전히 새것 같았다. 그나저나, 만약 내가 그것과 같은 남방을 구입하면 후배는 무척 기분 나쁠까? 말해 뭐할까. 다른 건 몰라도 비싼 돈 주고 구매한 옷을 입고 외출했는데, 저 앞에서 자신과 똑같은 옷을 입은 누군가가 다가온다면, 아, 정말 기분이 무척 상할 수밖에 없겠지. 그런 상황을 만났을 때 여성들은 새로 산 옷이지만 옷장에 쳐박아놓고 입지 않는다던데..... 물론 후배 앞에서 "나도 이 남방 사야겠는데. 어디 제품이지?" 하고 물었을 때, 후배는 "이 옷 괜찮아요. 지금은 많이 저렴해졌을 걸요. 이 옷 사세요."라고 말해주긴 했는데..... 포켓에 다른 동물을 수놓은 디자인은 없는 걸까. 좀 더 찾아봐야겠다. 그럼. 그렇고 말고. 알면서도 일부러 남과 똑같은 디자인의 옷을 구매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