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7월 16일 초복(初伏), 누나들과 삼계탕

달빛사랑 2022. 7. 17. 23:15

 

어제 늦게까지 술을 마셨으니 오늘은 늦잠 자는 게 당연한 날, 하지만 오전에 작은누나가 잠을 깨웠다. 누나는 잠결에 전화를 받은 나에게 “오늘 너의 집에서 언니네 부부하고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어. 형부(나에게는 자형) 오면, ‘그동안 점심 한 번 같이 먹고 싶었어요’라고 얘기해 줘라.” 했는데, 나는 “싫어요. 맘에서 우러나와야지……”라고 대답했다. 누나는 살짝 맘이 상했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대답해놓고 나니 나도 맘이 불편했다. 그냥 “알았어요”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감정을 실어서 대답했는지 모르겠다. 잠결에 전화를 받아 약간 짜증이 났던 모양이다. 주말은 오로지 나 혼자만의 시간인데, 그 소중한 한때를 빼앗겼다고 생각했던 걸까. 옹졸하기도 하지. 작은누나는 미리 와서 삼계탕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어 식사 준비를 끝냈다. 큰누나 내외는 12시쯤 도착했다. 자형은 과일을 사느라 같이 들어오진 않았다. 큰누나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하여간 저 인간은 자기만 안다니까. 3지구에서 여기까지 걸어왔어. 택시가 안 잡히기도 했지만, 기가 막혀서……” 복날 더위 속을 70살 먹은 노인네들이 걸어왔다니, 화가 날 만도 했다. 잠시 후, 자형이 참외와 복숭아 등 과일을 손에 들고 땀에 흠뻑 젖어 도착했다. 다른 쪽 손에는 피처 맥주 한 병이 들려있었다. 큰누나가 “야, 네 매형 술 마셔야 한다고 차도 놓고 걸어서 여기까지 왔어.” 하며 자형 쪽을 흘깃 봤다. 자형의 티셔츠가 땀으로 온통 젖어 있었다. 큰누나 내외는 염색하지 않아서 그런지 얼마 전 봤을 때보다 늙어 보였다. 큰 자형은 원래 다소 이기적이고 겉멋을 많이 부리는 양반이다. 흥이 많고 노래도 잘 부르고 모든 술판에서 분위기 메이커지만, 가족들에게는 무척 인색하고 무관심해서 문 씨네 쪽에서 볼 때는 썩 맘에 드는 인간형은 아니다. 지금은 나이 들어 그렇지는 않지만, 젊었을 때는 바람기도 있어 큰누나와 울 엄마의 마음을 무척 아프게도 했다. 물론 나이 차가 나에게는 졸업식 때마다 양복도 사주고 용돈도 주는 자상한 형이긴 했지만……. 이제는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삶의 동반자가 되고 보니, 그의 주름과 센 머리칼이 왠지 모르게 안쓰러워 보이기도 한다. 술도 약해져서 소주와 맥주를 섞어서 거푸 서너 잔을 마시더니 방에 들어가 이내 곯아떨어졌다. 어찌 되었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지금은 우리 가족 중에서는 가장 연장자이니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는 게 옳다는 생각이다. 자형은 세 시쯤 잠에서 깼다. 나는 편하게 가시라고 두 내외를 위해 카카오 택시를 불러주었다. 택시는 호출한 지 1분 만에 도착했다. 그래도 형제들 덕분에 복날을 그냥 넘기지 않고 절기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고마운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