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물꾸물 문화학교' 개소식
바람이 좋았다. 센 바람은 아니지만, 초복을 앞둔 7월의 바람치고는 제법 선선했다. 퇴근 후에는 비서실장과 함께 후배의 작업 공간 개소식에 참가했다. 우리가 도착하고 30분쯤 지나서 교육감이 비서와 함께 들어왔다. 개소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었다. 인천지역에서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하는 활동가들은 다양한 사업 과정에서 오래 전부터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이다. 교육감이 자리에 앉자 일부 중년 여성들은 일제히 민원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문화예술 공간을 지원해 달라, 예산을 증액해 달라 등등. 하지만 대부분 교육청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시청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중구 지역의 공가와 빈 사무실, 철거를 앞둔 파출소 등 유휴 공간을 활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아우성'들이었는데, 그것은 교육청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시청이나 구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사람들은 단체의 성격이나 단체장의 임무와 역할과 무관하게 조직의 수장이면 모든 걸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교육감은 '이런 종류의 민원'에 경험치가 있어서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하면서도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당장 해야 할 것과 시간이 필요한 것들을 명확하게 선을 그어 설명해 주었다. 30여 분간 앉아 있던 교육감과 비서실장은 다른 일정 때문에 먼저 일어나고 나는 민예총 이사장과 좀 더 이야기하다가 다인아트 윤 대표의 차를 얻어타고 구월동으로 나와 갈매기에 들렀다.
갈매기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환경운동연합 식구들도 보였고, 정웅이도 있었으며, 나중에는 유봉희와 최광석도 어딘가에서 1차를 하고 얼근해서 들어왔다. 집에 돌아가려 할 때쯤엔 후배 황 모가 합석했다. 그녀는 동인천 후배의 개소식에서 만났을 때, 송도에서 약속이 있다고 먼저 일어났던 터였다. 올 때부터 그녀는 취해 있었다. 도대체 그녀는 그 늦은 시간에 무엇 때문에 구월동까지 나와서 내 자리에 합석했을까.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에게 맘이 있는 걸까. "저, 선배님 보고 싶었어요"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진심인지 술 취해서 하는 농담인지도 알 수 없었다. 갈매기에서 나와서는 근처 '비틀즈'에 들러 음악을 들었다. 정열 형이 맥주를 사준다고 해서 들른 거지만, 황은 '얄밉게도' 아니면 눈치없게도 1만8천원짜리 맥주만 골라 마셨다. 내가 괜스레 얼굴이 뜨거워졌다. 아무튼 듣고 싶은 노래 원 없이 신청해서 듣다 나왔다. 전작들이 있어서 술은 그다지 많이 마시지는 못했다. 황 먼저 택시를 잡아 태워보내고 나머지는 각자 흩어져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금요일 밤이라서 그런지 늦은 밤이었지만 택시를 잡기가 정말 어려웠다. 정열 형과 광석이는 차도 이쪽 저쪽을 왔다갔다 하며 택시를 기다렸는데, 정작 가장 빨리 택시를 잡은 것은 한쪽에서 진득하게 기다리고 있던 나였다. 집에 돌아왔을 때 "택시가 안 잡혀"라는 정열 형의 문자를 받았다. 저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