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란 분갈이ㅣ공모자료 검토
집에 있던 접란 아기 뿌리 두어 개를 청사에 가져와 흙에다 심었다. 집에서는 빈 병에 물을 넣어 수경을 해왔는데, 청에서는 흙을 구하기 쉬워 화분을 만들었다. 워낙 생명력이 강한 녀석이라서 물만 빼먹지 않고 준다면 잘 자랄 것이다. 집에서처럼 꽃마저 피워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꽃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청을 그만두기 전까지 서너 분에게 분양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금요일이었지만 술집으로 가지 않고 곧장 퇴근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진행할 예술공간 지원사업 심의를 위한 자료를 검토해야 했다. 105건의 신청서를 검토하려면 오늘부터 부지런히 살펴봐야 한다. 다행히 재단에서 서류 행정 검토를 사전에 꼼꼼하게 해놔서 검토가 무척 쉬웠다. 직원들의 수고가 많았을 것이다. 일단 오늘은 50여 건을 검토했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코로나19 상황에서 모든 예술가와 단체들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 저마다 안타까운 처지와 눈물겨운 사연을 지니고 있었지만, 공모란, 더구나 공공의 자금(세금)으로 이루어지는 공모는 엄중하게 진행할 수밖에 없다. 공모의 생명은 상황에 대한 공감과 심의의 투명성과 지원의 형평성이다. 문제는 한정된 자원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다 보니 딱한 상황에는 공감하지만, 기본적인 공모의 요구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배제할 수밖에 없다. 자칫 온정주의에 빠져 원칙을 깨게 되면 공모의 투명성은 손상을 입는다. 따라서 심의위원들은 엄중하고 치밀하게 심의를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그러한 원칙들을 염두에 두고 진행한 몇 차례 심의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보았을 때, 기발한 아이디어로 코로나라는 위급한 상황을 발랄하게 돌파하거나, 꾸준한 뚝심으로 성실하게 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예술을 지켜나가고 있는 많은 예술가와 단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지원서를 만났을 때 심의위원들은 기쁘다. 더 많은 지원이 이루어져 그들의 예술에 대한 열망이 식지 않게 되기를 소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성실한 지원서 작성은 물론 공모 조건을 읽어보았는가 의구심이 드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반드시 제출해야 할 서류 누락은 물론이고 공모 조건에도 명기되어 있듯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거나 공간 상황이 어려워도 예술 행위와 공간 유지의 목적을 수익 창출에 두었다고 판단될 때 (수익이 나고 안 나고의 문제는 다른 문제임) 눈물을 머금고 선정에서 배제할 수 있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제한 조건에 걸리는 많은 예술가와 단체들이 지원서를 제출했다. 물론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 수익을 내려 해도 나지 않는 상황이라 공간 운영이 어렵다는 걸 말하는 것이겠지만, 공공기관 공모는 특별한 경우(자료를 근거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소명할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애초의 원칙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어렵다. 그래서 뒷말도 많다. 재단의 심의는 촘촘한 그물이 아니다. 그러기에 여러 심의위원이 돌아가며 검증하고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여 최종 선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지원 예술단체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