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 내 삶의 동력이자 희망입니다
오늘도 복권은 맞지 않았습니다. 재미로 산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당첨의 기대를 버리지는 못합니다. 1등은 아니더라도 5등은 기대하곤 합니다. 돈 들이지 않고 다음 회차의 복권을 구매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5등조차도 당첨되지 못했습니다. 꿈이 예사롭지 않은 날, 출근하면서 복권을 사곤 합니다. 남들에게 닥치는 행운이 나에게 닥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요. 복권조차도 타고난 행운이 있어야 한다면 정말 속상할 것 같긴 합니다. 하긴 내가 그 주인공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점점 나는 그런 행운과는 인연이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더군요. 그러한 행운이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신의 큰 뜻이 있겠지요. 어쩌면 나는 돈과는 바꿀 수 없는 달란트를 이미 타고난 것일 수도 있을 것이고요. 나이가 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을 받을 때, 경제적인 여유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아들에게 물려줄 최소한의 유산이라도 소유하고 있어야 아버지 노릇을 하는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덧없는 생각이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나는 아직 내리는 눈과 비를 보면 가슴이 격동하고, 바람이 불면 누군가가 그리워집니다. 어린 꽃의 개화에 감동할 줄 알고, 눈길 받지 못하는 것들이 지닌 소중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압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내 것을 포기할 줄도 알고,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 잠든 사물을 향해 안부의 말을 던지기도 합니다. 길에서 만나는 개나 고양이의 눈과 마주칠 때 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대화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익숙한 음악에 젖어 정거장을 지나친 적도 있습니다. 단지 나와 한 하늘 아래 산다는 이유만으로 생면부지의 누군가를 연민하기도 하고 지금은 하늘에 계신 엄마의 말소리도 원하면 언제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자신도 있습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아니 어쩌면 나는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또 모르지요. 누군가는 나를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재미없고 또 아슬아슬할까요. 물론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건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있어 세상은 재밌고, 긴장 속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유형의 것을 포기함으로써 무형의 어떤 것을 얻을 수 있고,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는 세상의 이치를 나는 믿습니다. 내가 얻게 된 의미 있는 교훈 중에는 그것(교훈)을 얻기 위해 엄청난 경제적, 심리적, 물리적 대가를 치른 것들이 꽤 많습니다. 뭔가를 잃을 당시의 마음은 너무도 황당했고, 절망스러웠습니다. 머릿속에서는 사시사철 내내 마른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나 악몽 같은 시간이 지나자 상처에 새살이 돋기 시작했고 그렇게 아문 상처는 상처가 아니라 시행착오를 막아주는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더군요. 삶에는 공짜가 없다는 말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주변에 좋은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들이 내 삶의 동력이자 희망입니다. 아마도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나는 이곳 인천에서, 그들과 함께 살다가 생을 마치게 되겠지요. 나에게는 그들이 당첨된 복권보다 소중합니다. 나도 그들에게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서 더욱 보람이 있는, 행복한 수고로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