뒹굴뒹굴, 무료한 일요일
장을 봐야 하는데 귀찮아서 그만두었다. 아랫집에서 팥죽과 불고기를 가져다주었고, 누나가 찌개용 돼지고기와 소고기 국거리를 사다 주어서 당장 먹을 반찬거리와 요깃거리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코로나 확진사 수가 5만 명을 훌쩍 넘은 요즘, 사람 많은 마트에 가는 것도 은근히 걱정된다. 혼자 사는 데도 이렇듯 장 보기가 귀찮은데, 가족들의 매 끼니를 챙겨야 하는 주부들의 수고로움은 얼마나 클까. 종일 집에 있는 날은 특별히 에너지 소모할 일도 많지 않은데, 왜 끼니 때가 되면 허기가 느껴지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뱃속에 걸인이 들어앉은 모양이다.
몸이 간사한 것인가? 오늘은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땀이 났다. 작은 선풍기를 틀었다. 2월에 벌써 선풍기라니, 그렇다면 한여름에는 어떻게 견딜 생각인지 모르겠다. 보일러의 온도를 낮추면 될까. 사실 더위에 속수무책인 몸도 문제지만 무언가를 해야하는데 손가락 까딱하기 싫을 때가 자주 있다는 게 문제다. 허리도 아프고 머리도 무겁고 눈은 침침한데다 잡생각이 많다. 그래서 어떤 때는 한 시간 가까이 멍하니 앉아 있거나 유튜브 화면만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다시 컴퓨터를 켜고 같은 패턴을 반복하게 된다. 이러다 더는 글을 쓰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이다. 특히 시를 쓰지 못한다면 내 장년의 삶은 무척 건조해질 텐데.....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전립선 비대증을 예방하는 소팔메토와 눈에 좋다는 루테인, 그리고 마그네슘과 철분제를 구입했다. 나이가 들수록 먹는 약이 많아진다. 사실 의사의 처방 없이 구입할 수 있으니 약이라고 하기보다는 영양제가 맞겠다.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홈쇼핑 구매 후기는 믿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 사람만큼 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몸에 좋다면 바퀴벌레도 잡아먹을 것이다. 그런 노인들의 성향을 겨냥해 건강보조식품 시장은 어마어마하게 비대하다. 과연 효과는 고사하고 제조 과정의 문제점을 제대로 검수하고 허가를 해주는 건지 그게 의문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 비싸더라도 그나마 이름있는 제약회사의 제품을 구매한다. 그 회사들도 이름만 빌린 위탁 업체일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대형 제약회사가 관리감독한다면 조금은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이것도 백 퍼센트 신뢰하긴 힘들다. 그러려니 하거나 플라세보 효과를 기대하며 습관처럼 먹는 거다. 6개월 이상은 먹어야 그나마 효과가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그래도 그게 어딘가 하는 마음으로 먹는 것이다. 가끔 연예인들 중에는 따로 약 보관함을 가지고 다니며 한 움큼의 약을 먹는 이도 있던데, 나는 고작 세 종류를 먹고 있으니 소박한 식약(食藥)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다. 원래 먹고 있는 처방약(고혈압약, 고지혈 약)까지 합치면 나 역시 대여섯 종류를 먹고 있는 것이구나. 하, 이거야 원. 나도 불안한 노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