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후배들과 갈비를 먹다
제고 후배 상훈과 하동 그리고 오늘 만남을 조직한 은준과 오랜만에 구월동 돼지갈빗집에서 만났다. 그동안 다소 소원했던 상훈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은준이의 의지가 반영된 모임이었다. 둘은 너무 같고 또 너무 다르다. 그러다 보니 사석에서 종종 부딪쳐왔다. 둘 다 엄청난 상식의 소유자인데, 지식의 깊이 면에서 가끔 은준이가 한계를 보이고 그것이 상훈이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자존심 싸움 같기도 한데, 그것이 꽤나 심각하게 불거질 때가 있다. 은준이 쪽에서는 오히려 담담하다. 그러고 보면 상훈이가 은준이에게 경쟁 의식을 느끼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아무튼 오늘 모임도 “나는 전혀 그런 거(싫어하거나 어색한 것) 없어요. 나는 상훈이 형 좋아해요. 오늘 한번 만나자고 형이 연락해 봐요.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요.”라는 은준이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상훈이의 퇴근 시간 때문에 약속은 6시 반으로 잡았는데, 나와 은준이는 5시 반에 만나 장소를 수배했다. 나는 오랜만에 갈매기에서 볼까 했는데, 상훈이가 갈매기 안주가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곳을 찾아야 했다. 조개구이집을 갈까, 닭갈비를 먹을까 고민했는데, 상훈이가 닭을 또 싫어한다고 해서 결국 찾은 곳이 민예총 근처에 있는 돼지갈빗집이다. 이곳은 오래전 수홍 형이 소개한 곳이었는데, 당시에는 왔다가 문이 닫혀 돌아서야만 했다. 당시 형의 말에 의하면 이곳은 줄을 서서 먹는 곳이라서 조금 늦게 가면 자리가 없어 돌아와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들렀을 때는 두 테이블에만 손님이 있어 한산해 보였으나, 6시가 넘어가자 손님이 들어차기 시작했고 상훈이가 도착한 6시 20분쯤에는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유명한 곳이긴 한 모양이다. 은준이는 이곳에 서너 번 왔던 모양이었다. 제법 능숙하게 안주를 고르고 일하는 아주머니들과도 아는 체를 했다.
고기 맛은 괜찮았다. 가격도 생각보다 저렴하고 기본 반찬들도 깔끔했다. 손님이 많은 이유가 이해됐다. 늘 갈매기에 들러 굴이나 두부, 생선을 안주로 먹다가 오랜만에 갈비를 먹으니 술도 덜 취하는 느낌이었다. 각각 소주 두 병씩을 먹었으니 도합 8명을 먹은 셈이다. 안주 가격을 합쳐 총 10만 2천이 술값으로 나왔다. 네 명이 고깃집에서 배불리 먹고 10만이면 양호하게 나왔다는 생각이다. 물론 더 싸고 맛있는 집도 찾으면 있겠지만, 적어도 구월동에는 많지 않은 건 확실하다. 20여 년 가까이 이 동네에서 술을 마셨지만, 그런 집을 발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괜찮은 술집을 귀신같이 찾아내는 수홍 형이 못 찾았다면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아무튼 기분 좋게 술을 마셨고, 오랜만에 갈비에, 가부릿살, 갈매깃살, 특수 부위와 껍데기 등 다양한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확실히 육류를 안주로 먹으면 속이 든든하다.
9시, 영업시간이 끝나고 술집을 나오니 거리는 생각대로 무척이나 붐볐다. 전철을 타기 위해 역으로 걸어가는데 후배들 모두 귀가하지 않고 뭔가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본래 술이 센 은준이는 술이 부족한 듯하여 우리 집에 데려가 한 잔 더할 생각이었는데, 따라오던 상훈과 하동도 합류하겠다고 해서 결국 우리 집에 2차 술집이 되었다. 슈퍼에 들러 술과 먹을거리를 사고 집에 왔을 때는 9시 40분, 은준이가 주방을 들락거리며 안주를 만들었고 상훈이와 하동이는 이방 저방을 기웃거리며 집을 구경했다. 소주 6병과 맥주 6캔을 샀는데, 맥주는 모두 마시고 소주는 4병이 남았다. 12시가 되기 전에 알아서들 일어났다. 내심 고마웠다. 설거지하고 정리하려면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후배들에게 각각 만 원씩 택시비를 나눠주고 거실과 주방을 정리했다. 취기가 싹 사라졌다. 확실히 나는 소주파인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화초들에게 물을 준 후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