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갈매기에 들르다
장은 마치 빚쟁이처럼 술을 먹자고 보챈다. 몇 차례 거절했기 때문에 오늘은 빚 아닌 빚을 청산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만나기로 했다. “형, 요즘 갈매기 안 가시나 봐요. 지난 토요일 교보 들렀다가 우연히 갈매기에 들렀는데, 종우 형이 ‘계봉 씨 어디 아픈가, 요즘 통 안 오네’ 하더라고요.” 장은 전화해서 그 말부터 했다. 사실 당분간 절주할 거라는 말을 장에게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는 마치 처음 알게 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 내가 갈매기에 왜 안 가는 건가를 궁금해한 거라기보다는 술 약속을 잡고 싶은 생각에 그 말을 꺼낸 거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그럼 이따가 오랜만에 갈매기에서 보자.”라고 약속을 잡았다. 마감 원고 하나를 끝낸 상태라서 맘도 홀가분했다. 막걸리 한 잔 마시는 게 뭐 대단한 일이겠는가. 애초에 금주(라기보다는 절주)를 계획할 때부터 내 쪽에서 먼저 술 약속을 잡거나 혼자 마시지 않겠다는 것이지 누군가로부터 연락이 오거나 공식적인 회식 자리에서조차 마시지 않겠다는 건 아니었다.
퇴근 시간보다 30분 일찍 사무실을 나와 약속 장소인 갈매기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CGV쯤 왔을 때 미경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갈매기에 와 있으니 빨리 오라는 것이다. ‘하, 이거 오늘 무슨 날인가?’ 갈매기에 도착하니 정렬 형과 미경이가 앉아서 술 마시다가 나를 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자리를 만들어줬다. 둘 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었다. 미경이는 오늘 정렬 형과 나에게 인천 문화 예술을 위한 신문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이번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선임과정에서 깜냥도 안 되는 인사들이 대거 후보로 나와 자신들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보며 기함했다는 것이다. 미경이 말의 요지는 한마디로 “이대로 놔둬서는 안 돼요. 인천의 문화예술을 그런 사람들에게 맡길 수는 없잖아요.”였다. 다행히 이번에는 실력이나 인품이나 그간의 활동 이력 모든 면에서 반박의 여지가 없는 분이 대표이사로 선임되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특정 단체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는 재단이 될 뻔했다는 것이다. 일단 제안 자체는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들과 30분쯤 이야기하고 있을 때 장이 들어왔다.
그러면서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번 대통령 선거로 모아졌다. 최근 일련의 사건들이나 기사,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는 게 모두의 의견이었다. 20대 젊은이들이 미신에 의존하는 모 정당 후보를 지지하고 있어 안타깝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민주당의 실정(失政)에 대한 실망감이 반사적으로 조폭 두목 같은 누군가를 지지하도록 한 게 아니겠냐고 말을 하긴 했지만, 뒷맛이 영 개운하지 않았던 건 어쩔 수 없었다. 여당 후보는 전과 4범이라는 프레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고, 상대 후보들은 식견과 정치철학 모든 면에서 천박한 일면을 보이고 있으니, 정말 이번만큼 선택이 쉽지 않은 선거는 처음이긴 하다. 그나마 여당 후보가 공약 면에서 실현 가능성이 있고, 국민 친화적이며. 행정 경험이 풍부해 굳이 덜 나쁜 놈을 뽑아야 한다면 그를 선택하게 되겠지만, 개운한 건 아니다. 내 감각으로는 여당 후보가 질 것 같진 않지만, 압도적인 지지 또한 받지 못할 것이므로 당선되고 나서도 민심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