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흐리다 개다를 되풀이한 하루

달빛사랑 2022. 1. 25. 00:34

 

 

 

날이 흐렸다. 새벽에는 비도 잠깐 다녀간 모양이다. 오후가 되면서 점차 날은  환해졌다. 아마 종일 비가 내렸다면 누군가에게 연락을 했을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제는 월요일이었지만 갈매기에 들르지 않았다. 퇴근하면서 늘 갈매기 앞까지 데려다준 동료 보좌관은 내가 주차장 쪽이 아니라 전철역 쪽으로 방향을 잡자 "(갈매기) 안 가요?" 하며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웃으며 "당분간 술을 좀 자제하려고요." 했더니,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오케이 동작을 해주었다. 항상 갈등과 유혹에 관한 나의 태도가 결정되는 건 사무실에서 현관까지의 50미터다. 가끔 전철역까지 갔다가도 1호선 승강장까지 걸어내려 가 갈매기로 방향을 튼 적도 있다. 지난주부터 가지 않았으니 일주일이 넘게 들르지 않은 건데, 아마도 종우 형은 무슨 일까 궁금해할 것이다. 한 달에 30~40만 원을 술값으로 쓰는 건 나에게는 지나치게 과도한 지출이다. 게다가 건강도 이전에 비해 안 좋아졌을 게 분명하다. 물론 티 나게 달라진 것 없지만,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주일에 사흘 이상 술 마신다는 것은, 60대인 나이를 생각할 때 무모한 일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매출이 감소한 단골 술집의 어려움을 의리로 헤아려주기에는 내 코가 석 자다. 일단 술을 마시지 않으면 하루가 길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머리가 개운하고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의욕이 샘솟는다. 누군가 나를 술집으로 불러내지 않는 이상 당분간은 절주 모드를 유지할 생각이다. 

 

어제 후배는 자신의 공연을 교육문화회관에서 할 수 없느냐며 이것저것 물어왔다. 학생교육문화회관은 공공기관이므로 이미 2022년도 공연 라인업은 결정되었을 것이고 예산 배정도 끝났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공모를 진행할 때 원서를 넣었는데도 선정되지 않았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후배 말처럼 (혹은 내심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인천 팀들이 홀대당하고 있는 것이거나 후배의 공연이 교육문화회관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선정 과정 자체도 교육청의 의지가 아니라 외부 심의위원들이 심의를 한 결과이기 때문에 아무리 교육청이 관리 감독기관이라 하더라도 결정을 뒤집을 수는 없는 일이다. 사실 그동안 교육문화회관에서 진행한 공연들은 대부분 음악 공연들이었고 공연 주체들도 서울 팀들이 많았다. 인천이 홀대받고 있다는 오해를 받을 만도 했다. 하지만 심의위원들이 일부러 인천 팀들을 홀대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작품의 수준과는 별개의 이유, 이를테면 공연예산이라든가 내용의 적합성, 공연의 예술적 시너지, 해당 공연을 담보할 수 없는 무대의 조건 등등 다른 이유가 여러 개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선정되지 않은 이유를 오로지 인천 차별이나 심의위원의 개인적 감정, 중앙의존적인 태도에서만 찾을 건 아니라는 말이다. 일단 후배의 물음도 일종의 민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명확하게 전후 사정과 문화회관의 공연팀 선정 시스템에 대해 알려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문화회관 공연 팀장에게 공연 팀 선정과정과 최정 결정된 팀 목록을 알려달라고 부탁을 해놓은 상태다. 교육문화회관이나 교육청으로서는 저간의 사정을 정확하게 알려줘야 오해가 없을뿐더러 앞으로도 선정 과정의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예술가들 입장에서는 모든 절차가 투명해야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과 그들의 예술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라도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그런 일을 하라고 교육청에서는 나에게 월급을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피곤하고 매번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공공에 대한 신뢰를 깨뜨릴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