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특별히 달라진 건 없고
해가 바뀌고 이틀째,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 마음가짐조차 그런 게 다소 이상하다. 예년 같으면 작심삼일이 되더라도 뭔가 이것저것 계획을 세워보곤 했는데, 올해는 특별히 그런 게 없다. 팬데믹 상황 속에 오래 생활하다 보니 뭔가 해보려는 의지조차 무뎌진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음주와 흡연 문제부터 남는 시간을 소일하는 방식, 대인관계, 식습관 등등 사실 변화되어야 할 것들은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것들을 변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게을러진 것이거나 무기력해진 것이다. 물론 계획은 꼭 월초나 연초에 하란 법은 없다. 하지만 뭔가 끝나고 새로 시작하는 '매듭' 시점에서조차 변화에 대한 모종의 결심을 하지 않았다면 바쁜 일상에 빠져 생활할 때는 결심하기가 더 어려운 법이다. 시간은 속절없이 가고 생활은 관성에 젖고……. 지인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성취들이 나를 자극하긴 하는데, 문제는 그때뿐이라는 것. 아무튼 다른 건 몰라도 올해는 반드시 시집이나 산문집을 내려고 생각 중이다. 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쉽지 않겠지만 어려울 때마다 발휘되곤 하는 나의 집중력을 다시 믿어볼 수밖에.
주말 내내 다시 정주행 한 만화(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 포함) '귀멸의 칼날'은 소년 만화의 여러 클리셰에도 불구하고, 색다른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귀살대와 혈귀들이 보여주는 액션의 스펙터클도 인기의 한 요소겠지만, 표면적인 캐릭터 이면에 있는 각 인물(귀살대와 혈귀 모두)의 삶에 관한 세밀하고 풍부한 서사가 인기(감동이라고 해도 무방)의 또 다른 요소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인간을 잡아먹음으로써 힘을 키우는 혈귀들도 본래는 선량한 인간이었고, 그들이 혈귀가 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처절한 개인사가 존재했다는 걸 구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몇몇 혈귀는 악의 축에 속한 잔인한 빌런임에도 불구하고 독자와 관객들은 자주 그들을 동정하고 연민하게 된다. 보통 사람들도 그들과 같은 전사(前事)를 겪었다면 혈귀가 되고 싶은 욕망(자신의 삶을 짓밟은 가혹한 운명이나 인물에 대한 복수심에 다름 아닌) 앞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사실을 매우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 만화가, 비범하지만 무예가 약했던 주인공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만의 비기를 획득하고 다양한 조력자를 만나 결국에는 엄청난 힘을 지닌 혈귀들을 차례대로 물리친다는, 영웅 서사의 전형성과 권선징악이라는 주제의 도식성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괴수물 소년 만화 그 이상의 감동을 주는 이유는 아마도 앞서 말한 ‘인물의 입체성’ 때문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