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사흘째 강추위

달빛사랑 2021. 12. 26. 00:41

 

추위는 종일 맹렬했다. 바람에서는 적의마저 느껴졌다. 천연덕스레 밝은 햇살을 보면서도 방심할 수 없었다. 한해의 끝무렵에 만나는 이 모진 추위는 조만간 열릴 새해에 대한 모종의 암시 같다.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우리는 힘들게 견뎌내야 하는 걸까. 해가 바뀔 때마다 나는 분명 뭔가를 하나씩 잃고 있다. 내려앉는 잇몸, 떨어지는 청력, 자주 쑤시는 무릎과 허리, 침침해지는 눈... 하지만 이런 건 아무 것도 아니다. 나를 무척 조급하게 하는 것은 소중한 기억조차 하나씩 나를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고독이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오롯이 고독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심지어 상대의 호의조차 서로 뭔가 주고받을 게 있을 때 유지되는 것이라는 강박도 있다. 이러한 강박은 종종 나의 모습을 스스로 위장하도록 만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만약 나의 ‘아홉 켤레의 구두’를 지킬 수만 있다면 나는 저 가공할 추위 속을 맨몸으로 돌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곤 한다. 이 겨울밤, 저 창밖의 살을 에는 추위와 살의마저 느껴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지금 이 시간 혹시 나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 잠시 생각한다. 사실 이런 의문은 얼마나 초라하고도 이기적인가. 하지만 오늘 같은 겨울밤은 그런 초라하고 이기적인 생각을 아무런 마음의 저항 없이 떠올리게 만든다. 이기적인 그리움조차 용납되는 시간이다. 마지막 순간에는 사람도 사물도 대책 없이 너그러워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 너그러움, 혹은 모든 것을 용납할 수 있다는 담담한 표정 뒤의 미련은 읽어내지 못한다. 한 해가 가고 오는 때가 생명 있는 모든 것을 긴장시키는 겨울이라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지금은 겨울의 복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