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은 정말 길구나 (12-05-日, 맑음)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12월조차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가차 없다. 요즘 하루하루를 돌아보면 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또 뭔가를 명백하게 잃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참으로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도 왜 이렇게 마음이 허전한 건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는 오히려 생각하지 않았던 모종의 욕심이 생겼기 때문일까. 이런 불안함과 허전함을 느끼면서도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쓰고 있는 게 아닌지 반성도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설사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미련을 끄자. 더구나 그것이 세속적인 욕망을 채워주는 것일 뿐, 내 영혼을 풍부하게 해주는 일이 아니라면 더욱 확실하게!
그리고 1년을 조금 넘긴 직장 생활은 내게 경제적 여유를 가져다주었지만, 보지 않았어도 될 온갖 모습의 추한 욕망을 보게도 했다. 면종복배, 복지부동, 사리사욕, 권모술수, 아전인수, 견강부회 등의 모습을 확인하는 일은 곤혹스럽다. 사람들이 모인 세상에서는 항용 있을 수 있는 모습들이겠지만, 내가 몰랐던 ‘세계’에서 만난 그것들은 나를 자주 슬프게 한다. 물론 나아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헌신적이고 선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건 나(혹은 우리)만의 생각이고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우리 무리도 아집과 독선에 가득한 무리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이 나를 슬프게 하는 지점인데,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모든 조직은 혹은 조직 간의 관계는 지극히 정치적이며 힘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교육, 문화, 예술은 나에게 얼마나 거룩하고 신성한 가치를 지닌 단어들인가. 그러나 이런 신념을 소리 높여 강변하는 것이 해당 인물 혹은 조직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생각해 보라. 모든 극렬 극우 단체들의 이름에 애국과 국민, 민주주의란 단어가 빠진 적이 있었던가.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입으로는 교육, 문화, 예술, 민주의 가치를 내세우면서도 각각의 조직은 지극히 비교육적이고 반문화, 반예술적으로 부딪치고 다툰다. 이런 게 나를 힘들게 한다. ‘도대체 내가 저 반문화 반예술의 여리고 성을 과연 무너뜨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자신이 없어진다. 그냥 피곤한 일에는 눈을 감아 버리고 때가 되면 나오는 월급이나 차곡차곡 챙기면 될 일이라는 생각이 자주 나를 유혹한다. 그럴 때면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정말 정당하고 올바른 일인가 하는 생각 또한 든다.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겨울밤은 참 길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