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귀가하다 (2021-11-26-금, 맑음)
김은경 시인이 김안녕이란 필명으로 세 번째 시집을 발간하셨군요. 보내주신 시집, 꼼꼼하게, 마음으로 읽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무쪼록 단단해진 "사랑의 근력"으로, 짐승의 시간 같은 현실 속에서, 새로 입은 이름처럼 늘 '안녕'하시고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점심에는 신포동에 들렀다. 오랜만에 교육감과 특보들이 함께 식사했다. 함께 자리한 법률특보는 12월부터 인천공항 공사의 상임감사로 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40대 변호사인 그를 만날 때마다 나는 위축되곤 한다. 그가 변호사라서가 아니라 40대 특유의 힘과 자신감이 그의 눈빛, 몸짓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끔 그 자신감이 정치적 야심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정치인의 길을 가더라도 그건 그의 몫이고 결정일 뿐 탓할 이유는 없다. 현실 정치에 넌덜머리를 느끼는 나로서는 왜 젊은 사람들이 그 진흙탕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긴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주변의 모든 사람이 예민해져 있다. 인지상정이겠지. 언제부터인가 선거는 누가 옳은가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누가 유능한가를 선택하는 일이 되었다. 치명적인 도덕적 흠결이 없다면, 있다 해도 상대보다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면, 결국 맡겨진 일을 얼마나 훌륭하게 감당해 내는가가 선택의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후보들의 능력치가 비슷할 경우는 자신과 후보와의 친소 여부가 선택의 기준이 될 것이다. 우리 후보는 옳고 너희 후보는 그르다는 공격은 촌스럽다. 나는 특보로서 당연히 현 교육감을 지지하지만, 그가 능력과 도덕적인 면에서 다른 모든 후보를 압도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 사람 저 사람 겪어봤을 때, 그중에서는 나름 훌륭한 인품과 실천력을 가진 좋은 후보라고 생각하지만, 나름의 한계도 분명 있을 것이다. 현실 정치에서 유권자 100%가 지지하는 후보가 나오기는 불가능하다. 설사 있다해도 그건 오히려 다양한 견해가 어우러지고 비판 기능이 살아 있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후보 역시 모든 사람을 내편으로 만들겠다는 바람은 버려야 한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자신의 소신과 원칙을 정책으로 녹여내고 많은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면 그뿐이다. 마타도어가 아니라 정책으로 승부하고 결과에 대해 깨끗하게 승복하면 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현 교육감을 지지하는 것이고 그의 승리를 바라는 것이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만약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편법을 일삼거나 학생과 교육보다는 자신의 명예와 영달을 위해 매진한다면 나는 그와 맺어온 인간관계의 연조와는 무관하게 미련없이 그를 떠날 것이다. 예술가의 자존감은 그런 것이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식사를 마치고 그들과 헤어져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교육감은 나를 믿고 있을까? 나를 믿는다면 나의 인간성을 믿는 걸까, 능력을 믿는 걸까? 시인인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는 정말 야망이 아닌 사명감으로 이 길을 가고 있는 걸까?' 등등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제물포역을 지날 때쯤 사무실 박 보좌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저 오후에 단양 내려가요. 화초들도 실내에 들어놔야 하고 보일러도 손 봐야 하고 해서요." 그의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생각의 사슬에서 풀려났다. 그의 말대로 시청에서 내리지 않고, 곧장 집으로 왔다. 택배가 도착해 있었다. 겨울에 쓰고 다닐 레옹 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