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생각보다 포근했던 가을밤 (2021-11-12-금, 맑음)
달빛사랑
2021. 11. 12. 00:11
제물포 사는 후배가 술 마시자고 연락했지만, 갈매기에 들렀다. 예전에는 신포동에서 연락이 와도 부리나케 달려가곤 했는데, 이제는 늘 가던 동네가 아니면 가기가 귀찮다. 후배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컸다. 다른 일행이 있긴 했지만, 후배는 분명 서운함을 느꼈을 것이다. 갈매기에 들렀을 때, 작가회의 회원 4명이 별실에 모여 모 백일장 심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작가회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심사를 끝낸 그들이 동석할 것을 요구했지만 잠깐 들러 안부만 나누고 동석하진 않았다. 거리두기가 다소 완화되었기 때문인지 술집은 오랜만에 북적였다. 갈매기뿐이 아니었다. 예술회관 인근의 모든 술집이 손님들로 가득했다. 기다리는 혁재는 나타나지 않았고 선배들만 서넛이 들어와 내 옆자리에서 술을 마셨다. 어차피 나는 많은 술을 마실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막걸리 두 병을 비우고는 이내 일어났다. 지하철을 타러 가면서 후배에게 미안하다고 전화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변명 같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미안하거나 변명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명확하게 “못 가!”라고 말하기보다는 “음…… 생각해 볼게”라든가, “나는 제물포가 멀게 느껴져”라는, 다소 모호한 대답을 했다는 게 찜찜하기는 했다. 의사 표현을 두루뭉술하게 하는 나의 우유부단이 불필요한 감정의 소모 상태를 만든 것이다. 한산한 지하철 상가에서 겨울 양말 세 켤레를 5천 원 주고 구매했다. 생각보다 포근한 가을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