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위드 코로나 시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달빛사랑 2021. 11. 10. 00:10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세는 여전히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단계적 일상 회복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고 코로나19와 공존하겠다며 방역의 변화를 선언했지요. 좀처럼 사윌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에 마침내 투항한 걸로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물리적으로는 쉽게 이길 수 없어 결국 적과의 동반을 결정했으니 말입니다.

사실 민생의 피폐는 임계점을 넘은 지 이미 오래입니다. 방역 초기 국민은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거리두기의 불편함을 감당했지요. ‘우리 민족은 위기에 강하다’라는 해묵은 문장을 강조하면서까지 모든 이의 인내심을 볼모로 방역을 진행하던 시기였습니다. 실제로 방역의 효과가 나타나긴 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기도 했지요. 그러나 당시의 인내심이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건 ‘조만간’ 그 고통의 시간이 끝날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조만간’이 무려 2년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부는 일부 자영업자들과 정치적 처지가 다른 이들로부터 갖은 모멸과 힐난을 받으면서도 강력한 거리두기를 강제하고 백신 접종을 독려해 왔습니다. 국민 70%가 2차 접종까지 마치면, 확산세는 누그러지고, 설사 감염이 되더라도 위중한 환자는 격감할 것이기에 충분히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말입니다. 확실히 최근에는 위급한 환자가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확산세는 예상처럼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더는 국민에게 인내심을 요구하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포기하라고 강변할 수 없게 된 것이지요. ‘작전’을 변경할 때가 온 것입니다.

위드 코로나가 고육지책이란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코로나의 완전 구축(驅逐)을 희망했던 정부와 국민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싸움의 승패는 종종 자존심보다 실리 앞에서의 태도에 따라 갈리곤 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이제 우리는 불청객 코로나19에게 우리 삶의 한 편을 내줄 수밖에 없습니다. 한때 안방까지 차지하고 우리 삶을 위협하던 그악스러움은 다소 무뎌지긴 했지만, 당분간은 불편한 동거를 감수해야 할 겁니다.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그동안 눈앞의 재앙과 맞서느라 잊고 있던 것들, 너무 피곤하단 핑계로 외면했던 것들을 하나씩 호명하며 새삼 그것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선 교육 현장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실을 잃어버리고 친구와의 소통도 차단당해야 했던 학생들과 현장에서 방역은 물론 교육까지 책임져야 했던 선생님들의 노고는 절대 예사롭지 않은 일입니다. 놀이와 소통이 배제된 채 온라인 학습을 해야 했던 학생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기억해야 하고, 학생이 없는 학교를 지키며 학교 방역의 최전선에서 수고하신 선생님들의 숨은 땀방울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학생과 교사, 교육을 대하는 우리의 예의입니다.

또한 이 땅의 예술가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대와 관객을 바이러스에 빼앗긴 채 생계의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끝끝내 창작의 열망을 포기하지 않고 예술 현장을 지켜온 예술가들, 그들이 악조건 속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은 도저한 예술혼과 그 총화로서의 예술작품들이 있었기에 팍팍한 현실은 재앙 속에서도 최소한의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한 나라의 품위는 예술과 예술가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도 드러나는 법입니다. 블랙리스트라는 희대의 추문 속에서도 오롯이 예술을 지켜낸 예술가들, 이제는 그들을 기억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요양원에 누워계시거나 홀로 사는, 병들고 쓸쓸한 노인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노인들은 안 그래도 곤비한 삶이 코로나로 인해 더욱 비참해졌을 것임은 불문가지입니다. 국가의 복지가 아무리 촘촘해도 모든 노인에게 고루 미치지 못하는 법입니다. 주변과 이웃이 기억하지 않으면 그들의 쓸쓸한 삶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노인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공경과 예의의 문제를 넘어 모두가 감당해야 할 사회적 현안이자 의무입니다. 그 의무를 기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품격입니다.

방역의 일선에서 애쓰는 의료 인력들의 노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이만큼이나마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것도 그분들의 덕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과도한 업무에 자꾸만 까라지는 몸을 추스르며 자신이 맡은 일을 온전히 감당해준 그분들 덕분에 코로나를 달래며 살 수 있는 지금의 여유도 맞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방역복 안에서 숨쉬기조차 힘든 한여름은 물론이고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서도 그들의 헌신은 한결같았습니다. 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을 이제는 우리가 그분들에게 돌려줘야 할 때입니다.

이 밖에도 학대받는 아이들, 일터를 잃은 노동자, 이주민을 비롯한 모든 사회적 약자들과 119 구급대원, 환경미화원 등 각자의 현장에서 각각의 임무와 역할을 묵묵하게 수행하는 많은 분을 우리는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배려와 연민과 고마움을 기억하는 마음이 사슬처럼 엮이고 연대를 이룰 때, 우리는 비로소 코로나가 강제하는 불편한 ‘접속의 시대’를 종식하고 자연스러운 소통과 내밀한 교감이 가능해지는 ‘접촉의 시대’를 앞당길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우리의 품격은 우리가 스스로 지키는 것이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며 이 가혹한 바이러스의 시간을 마주합니다. 아직 싸움은 이곳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