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할 정도로 한가로운 주말
특별한 일 없이 하루를 보냈다. 날은 맑고 공기도 좋아 코로나만 아니라면 공원이라도 걸었을 것이다. 아침에 잠깐 청소하고, 줄곧 영화를 보거나 유튜브 동영상을 시청했다. 오후에는 낮잠도 잤다. 빈집에 혼자 있자니 자꾸 엄마 생각만 간절했다. 괜스레 이 방 저 방을 거닐고, 비뚤어진 액자를 바로 잡고, 시효 지난 달력을 떼어내며 시간을 죽였다. 그래도 시간이 가지 않을 때는, 잠자리에 누워서 천장을 보거나 음악을 듣다가 책을 집어 들었다. 읽지는 않았다. 가끔 테라스에 나가 화초들을 구경했다. 얼마 전에 꽃을 피운 접란이 다시금 새로운 꽃대를 내밀고 있었다. 빨래할까 생각하며 이 옷 저 옷을 살펴봤지만, 세탁할 필요가 없을 만큼 모두가 깨끗했다. 너무 심심해 좀처럼 보지 않던 뉴스도 보았다. 똥 묻은 개들이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늘 그렇고 그런 상황이 보도되고 있었다. 어제까지 수세에 밀리던 누군가가 새롭게 밝혀진 사실로 인해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는 뉴스도 나왔다. 버라이어티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지만, 재미없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문득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도 사선을 넘으며 삶의 경계에서 아득한 사람들이 많을 텐데, 나는 너무도 한가해서 미안했다. 물론 다음 주에는 정신없는 몇 가지 일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미리 당겨서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당장 저녁은 뭘 먹을까를 걱정했고, 물이 새서 수리한 보일러가 다시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소일하다 저녁을 맞이했다. 저녁이 되자 바람의 표정이 급속도로 변했다. 엊그제 구매한 체중계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저 위에 올라가기가 두렵다. 최근 체중이 4kg이 늘었다. 그래도 야식에 대한 유혹은 체중계가 줄여준다. 하루가 다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