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평범한 일요일

달빛사랑 2021. 8. 22. 00:36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럴 때 ‘평범한 하루였다’라고 말한다. 대수롭지 않게, 그냥 그렇고 그런 일요일이었다는 의미겠지. 그러나 평범함조차 사치로 느껴질 만큼 숨 가쁜 이 역병의 시절에는 평범함의 반대가 비범함이 아니다. 평범의 반대는 오히려 고달픔에 가깝다. 한 사람이 평범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는 무척 많은 것을 맞서서 감당하거나 비껴서 있어야만 한다. 이를테면 관계의 빚, 마음의 빚, 금전적인 빚, 몸에 진 빚 등 다양한 층위의 빚의 공세로부터 비껴서 있어야만 그때 비로소 평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짐승의 시간이 계속될 때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평범한 하루를 보낼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평범한 하루의 소중함을 모른다. 그 평범한 하루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길고 긴 고달픈 시간을 통과해야만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평범함은 평화로운 날의 비범함이라 말할 수 있다. 나는 평화로운 날 속에 있는 게 아니어서 나의 하루는 결코 평범해질 수 없는 운명이다. 그렇다면 만약 누군가로부터 “하루 어땠어?”라고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아마도 “응, 무척 비범했어. 정말이라니까.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믿을 수 있겠어?”라고 대답할 것이다. 평범해서 정말 고마운 날이다.

 

■오늘의 감사 일기

■심각하게 덥지 않아 고맙습니다.

■세 끼를 모두 챙겨 먹을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빚지지 않고 살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글을 쓸 수 있어 고맙습니다.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아 고맙습니다.

■전쟁을 겪지 않아 고맙습니다.

■예쁘고 대견한 테블릿을 얻게 되어 고맙습니다.

■낮잠 자고 싶을 때 낮잠 잘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런닝맨이라는 쇼프로그램을 보며 많이 웃을 수 있어 고마웠습니다.

■식욕이 남아 있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