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아들과 통화하다

달빛사랑 2021. 8. 19. 00:34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들은 군산법원에서 근무하다 3년 만에 인천지방법원으로 올라오게 되어 인하대역 근처에 오피스텔을 얻었다. 그런데 이 오피스텔이 상가용이라서 개인의 이름으로는 전입신고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올라온 지 서너 달이 되었지만, 현재 아들의 주소는 여전히 홍대 근처 상수동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함께 살던 엄마가 분당 외할머니댁으로 가게 된 모양이다. 결국 중간에 붕 떠버린 아들은 내 집으로 전입하면 안 되겠느냐며 전화한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등본을 떼면 덜렁 내 이름 하나 올라가 있어 썰렁했는데, 아들이 만수동 집으로 전입해 내 밑으로 들어오면 나와 함께 등본에 등재가 되니 아들이나 나나 덜 썰렁해지지 않겠는가. “언제든지 들어와라. 뭐가 문제냐.”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러고 나자 아들은 조심스럽게 “아빠, 나 술 먹고 넘어져서 깁스하고 목발 짚고 다녀”라고 말했다. “아니, 어쩌다가? 그리고 벌써 젊은 놈이 술 마시고 넘어져 다치고 다니면 어떡해.”라고 지청구를 쳤더니, “그때는 그럴 만한 상황이었어”라고 했다. 화가 나서가 아니라 걱정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것을 아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내 젊은 시절을 돌아보면 사실 그보다 더 황당한 일들을 술 때문에 겪었다. 심할 때는, 경제적 부담은 물론이거니와 몸도 상하고 인간관계도 틀어진 경우도 몇 번 있었다. 어쩌면 아들이 보인 모습은 그 또래 젊은이들이 보여주는 일탈의 평균치보다 훨씬 낮은 수준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식이 아프면 일단 가슴부터 턱 내려앉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엄마와 아버지의 가슴을 무던히도 철렁 내려앉게 만들었던 내가, 이제 부모의 처지가 되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일을 자주 겪는 걸 보면, 인생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랴, 앞으로도 자주 ‘덜컥’과 ‘철렁’을 경험하며 살아야 하는 게 아비의 운명인 것을. 전화 끝 무렵에, “아빠, 올해는 아빠 생일(음력)과 내 생일(양력)이 같던데.” 하며, “뭐 갖고 싶은 거 없어?”하고 물었다. 잠시 생각하다가 “없어. 정 주고 싶으면 현금으로 줘.”라고 멋대가리 없는 대답을 했다. 아들은 “알았어.”라고 착한 아이 톤으로 대답해 주었다. 아이의 쾌유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