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청사의 아침 풍경, 그리고 갈매기

달빛사랑 2021. 8. 18. 00:34

 

아침 일찍 청사에 나왔다. 도착하니 7시, 수많은 차로 붐비는 청사 주차장엔 서너 대의 차들만 주차되어 있었다. 차가 없는 청사는 무척 말끔하고 넓어 보였다. 현관을 들어서자 당직실 직원은 잠이 덜 깼는지, 기지개와 함께 크게 하품을 하다가 나에게 눈인사를 보냈다. 미화원 아주머니는 물이 든 양동이와 대걸레 들고 계단을 내려오다 나를 보자 꾸벅 인사를 했다. “아침부터 수고가 많으시네요” 하며 나도 환하게 웃어주었다. 아주머니는 수줍은 듯 살짝 웃으며 총무과 쪽으로 걸어갔다. 나처럼 일찍 출근한 직원이 열었는지 청소를 위해 아주머니가 열었는지 알 수 없지만, 2층 체육건강교육과와 3층 3국장실 출입문은 열려있었고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서서히 깨어나는 청사의 아침 풍경이 이제는 제법 익숙하다.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공기청정기를 켠 후,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했다. 컴퓨터를 켜니 정해진 프로그램으로 PC 의 보안검사를 하라는 팝업창이 크게 떴다. 1차 검사 결과는 80점, ‘즉시 조치’ 버튼을 클릭하고 윈도즈를 업그레이드했더니 100점이 나왔다. 이 점수는 자동으로 정보 보호팀으로 전송될 것이었다.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켠 후 빈 통에 물을 받아다 난초 화분을 담가 놓았다. 동양란은 저변 관수(灌水)를 해야 해서 일주일 한 번씩은 이렇듯 물이 든 통에 한 시간가량 넣어두어야 한다. 유튜브에 들어가 세미 클래식 음악을 작게 틀어놓고 커피를 마셨다. 분주한 청사의 하루 중 이 시간이 나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8시쯤 되자 5일간의 휴가를 보낸, 충청도 아저씨 박 모 보좌관이 “다들 잘 지냈어유?:” 하며 도착했고, 30분 후에는 노동특보인 보운 형이 도착했다. 월요일이 대체 휴일이었던 탓에 모두가 오랜만에 만난 느낌이었다.

 

저녁에는 다시 갈매기에 들렀다. 얼마 전, 갈매기에서 만났을 때, 오 모는 술에 취해 “형, 100만 원만 통장으로 넣어주세요. 낼 계좌번호 보낼게요. 주실 수 있지요? 나는 꼭 형에게 100만 원을 받아야겠어요.”라는 말을 반복했었다. 물론 다음날 후배 오 모는 계좌번호를 보내지 않았고, 연락도 없었다. 오늘 갈매기에 간 건 그 때문이다. 혹시 그를 만나면 왜 돈을 달라고 한 건지 묻고 싶었다. 정말 필요했기 때문인지, 그것조차도 술주정의 하나였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 모는 없었다. 갈매기 종우 형에 따르면 갈매기에 안 들른 게 사나흘 됐다고 했다. 다만 그가 왜 돈이 필요했는지를 추측해 볼 수 있는 이야기를 종우 형에게 들었다. 얼마 전 동화마을로 이사하게 된 후배 류 모가 돈이 부족해 집수리를 못 하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렇다면 오래전부터 류의 공사를 도와줘 왔던 오 모가, 공사비를 마련해 친구에게 주려고 돈을 융통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게 나의 추측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오 모는 술에 취하면 종잡을 수 없는 말과 제안을 해대는 주사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전자라면 도와줄 용의는 있다. 그들은 새로 이사하게 될 류 모의 집 1층에 조그마한 카페를 만들어 장사하려는 생각도 있는 것 같다.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이어서 카페를 내면 용돈벌이는 될 듯 싶은데...... 아무튼 내일까지 연락이 오지 않으면 내 쪽에서 연락해 볼 생각이다.

 

앗, 빗소리 들린다.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