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적어도 아침저녁으로는 완연한 가을이다. 거실로 나오면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오는 아침 바람이 제법 선선하다. 자연의 시계는 어찌 이리도 정확한 건지. 무더위가 한참 맹위를 떨칠 때는 올 것 같지 않게 아득해 보이던 가을의 시간이었다. 와도 더디 올 것 같았고, 과연 저 맹렬한 무더위의 한복판을 오겠다던 제시간에 가을이 무사히 통과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믿지를 못한 거다. 믿어주지 않은 나에게도 가을이 온다면 그것은 나의 기다림 때문이 아니라 가을의 성정이 유순해서일 거다. 가을은 나에게 선물이다. 이와 받게 될 선물이라면 마음껏 누리는 게 가을에 대한 보답이겠지. 그러려면 여름이 가긴 전에 해야 할 일들이 적지 않다. 일단 여름내 깔고 덮었던 이부자리와 여름옷들을 세탁해야 한다. 내방의 구조도 바꿔볼 생각이다. 오늘은 일단 가방들을 걸어놓았던 스탠드를 옷방으로 옮겼다. 앉아서 책을 보거나 노트북 작업을 할 때 쓰던, 책들이 가득 올려져 있던 머리맡 탁자를 치워 공간을 넓혔다. 김포 금쌀 두 포대를 주문했고, 이종임 김치 10㎏도 주문했다. 쌀과 김치가 그득하면 마음도 괜스레 넉넉해진다. 달걀과 쌀떡, 만두를 사다 놓으면 당분간 시장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가을이 오면 농부들만 분주해지는 게 아니다. 도시의 술꾼도 가을 앞에서는 분주해지는 법이다. 교정 작업도 마쳤으니, 이제 시를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앞으로 문화현장 원고가 남아 있긴 하지만, 마감이 임박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원고는 완성될 거라 믿는다.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디어의 문제다. 뭐를 써야 할지 소재가 좀처럼 떠오르질 않는다. 그것만 정해진다면 구력이 있으니 쓰는 건 문제 될 거 없다. 쓰는 건 내게 재미있는 일이다. 그리고 가을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