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렇고 그런 날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왔을 때, 지난주보다 확실히 열기가 덜했다. 더위가 한풀 꺾인 것 같아서 오랜만에 장을 봤다. 늘 구매하던 부식과 채소 서너 가지, 그리고 냉면 육수 6봉지를 사 왔다. 늘 북적이던 만수중앙감리교회 인근 건설 현장의 노동자들도 별로 눈에 띄질 않았다. 집 근처 근린공원 벤치에는 많은 노인이 정물처럼 앉아 부채를 부치고 있었다. 부채의 움직임이 슬로비디오처럼 느껴졌다. 돌아오는 길에 ‘신포순대’에 들렀는데, 4일까지 휴가 중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할 수 없이 근처 ‘신의주 찹쌀 순대’에 들러 순댓국 두 그릇을 포장해 왔다. 휴가철이라서 그런지 거리에 차도 별로 없었다. 한풀 꺾였다 해도 한낮 더위는 여전히 혹독했다. 장 본 물건들을 들고 돌아오는 내내 땀은 비 오듯 흘렀다.
집에 돌아와 미역 줄기의 소금을 털어낸 후 짠맛을 없애기 위해 물에 담가놓았다. 점심으로 포장해 온 순댓국을 먹었다. ‘신포순대’와 같은, 특유의 부드럽고 담백한 맛은 없었지만, ‘신의주 찹쌀 순댓국’도 먹을 만했다. 오후에는 빨래하고 청소하고 영화를 보며 지냈다. 두어 편의 영화를 보니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캔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는 게 휴가철 내가 누닐 수 있는 최고의 호사다. 저녁에는 올림픽 경기를 보긴 했지만, 한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보기보다는 이미 끝난 경기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 시청했다. 다른 건 몰라도 배구와 골프 종목만큼은 메달을 땄으면 좋겠다. 특히 배구 종목에는 감동적인 서사가 많다. 내가 좋아하는 김연경 선수와 김수지 선수가 환하게 웃게 되길 바란다. 배구 한일전을 보면서 문득 애초 목표였던 8강 진출을 넘어 은메달까지 노려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메달 획득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난적 터키와의 8강 전이 벌어진다. 선전을 기원한다.
가끔, 시간을 이렇게 써도 되나 싶을 정도로 느긋하게 하루를 보낼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낮잠도 안 잤는데 희한하게 졸리지도 않는다. 내 수면 질은 안 좋기로 유명한데, 그래도 왠지 모르게 불안하다. 새벽까지 이렇게 깨어 있으면 내일 출근해서 고생할 테니 말이다. 요즘은 운동하지 못해서 더더욱 숙면이 어렵다. 써야 할 글이 있는데, 머릿속에서 뱅뱅 돌뿐 좀처럼 생각이 정리되질 않는다. 난 확실히 벼락치기 형이다. 마감이 닥쳐야 글이 나오니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