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달빛사랑 2021. 7. 24. 00:38

 

 

가끔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난다

가능한 모든 변명들을 대면서

길들이 사방에서 휘고 있다

그림자 거뭇한 길가에 쌓이는 침묵

거기서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비가 새는 모든 늙은 존재들이

새 지붕을 얹듯 사랑을 꿈꾼다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심보선,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중에서

 

 

늙어가는 존재인 내 생의 어느 한 편에서도

비가 새고 바람이 들어차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사랑을 꿈꾸진 않는다. 

사랑 따위를 생각하곤 하던 마음의 지붕에

나로서는 어쩌지 못할, 속절없는 구멍이 뚫린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