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연극을 보다

달빛사랑 2021. 6. 26. 00:35

 

 

고민하다가 결국 예술회관을 찾았다. 후배 이재상이 쓰고 연출한 연극 <삼거리 식당>을 보기 위해서였다. 사실 이 작품은 작년 여름에 이미 본 작품이다. 어제 오전 혁재가 전화해 “형, 재상이 형 연극 보러 가실 거예요?”라고 물어오지 않았다면 안 갔을 것이다. 가끔은 의무적으로 봐줘야 하는 공연이 있다. 요즘 공연계는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이 크다. 게다가 재상이는 지난 월요일 일부러 나를 찾아와 공연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혁재도 함께 있던 자리였다. 혁재는 아마도 어젯밤 공연을 관람했을 것이다.

 

극장은 만석이었다. 인천 연극의 터줏대감인 이재상의 연극은 티켓 파워(ticket power)가 있는 편이다. 코로나로 인해 관객 수에 제한을 두긴 했지만, 수백 명의 관객이 들어찼다. 재상이도 무척 고무된 것 같았다. 재상이의 극단은 그나마 다른 극단에 비해 형편이 좋은 편이긴 하지만, 요 몇 년 동안에는 코로나로 인해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예정됐던 공연이 펑크가 나면서 운영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오늘 공연까지 올해 세 번의 공연을 올렸는데, 매번 표가 매진되어 기분이 좋았다는 말을 재상이로부터 들었다. 입장료 수입이 극단 운영에 실제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극단과 단원들은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공연 자체는 다소 밋밋했다. 눈 내리는 세밑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연극을 한여름에 보게 되니 다소 현실감도 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미 관람했던 연극이라서 관극(觀劇) 과정의 긴장감도 별로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주연배우 하나는 대사를 절기(버벅거리기)까지 했다. 50석 남짓한 소극장에서만 했던 공연을 수백 석이 넘는 큰 무대에서 재연(再演)하려니 긴장했던 걸까. 발성 자체도 달리할 수밖에 없으니 그런 ‘긴장’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개인적 이유 하나를 더 들자면, 카드를 잃어버려서 극이 시작되고도 한동안은 카드 분실을 어떻게 수습할까를 고민하느라 연극에 집중하지 못한 이유도 있다. 다행히 극이 끝나고 극장을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접으니 카드는 바로 의자 밑에 떨어져 있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순간이었다.

 

극장 앞에서 만난 후배 상훈과 그의 친구, 나까지 셋이서 오랜만에 갈매기가 아닌 ‘인천집’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깔끔한 안주와 편안하게 해주는 주인장의 서비스, 찾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참 괜찮은 술집이다. 의리만 아니라면 갈매기보다 인천집을 단골로 삼았을 것이다. 물론 갈매기는 갈매기대로의 장점이 있긴 하지만……. 후배들이 무대 정리하는 틈을 타서 재상이가 잠깐 합석했다. 상훈이는 평소에도 친구 재상이의 공연에 요모조모 신경을 많이 써주는 모양이었다. 오늘도 상훈이와 친구는 단원들과 뒤풀이하라며 두툼한 봉투를 재상이에게 전했다. 흐뭇한 순간이었다. 화장실 다녀온 사이, 상훈이가 계산했다. 후배에게 얻어먹는 성정이 아닌 나로서는 2차를 갈 수밖에 없는 형국이 되었다. 바로 앞 갈매기를 놔두고 경희네로 2차를 갔다. 막걸리 대신 소맥을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