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처럼 분주했던 하루
오랜만에 비가 오지 않은 주말, 나에게도 평화로운 하루였다. 마트에 들러 간단한 장을 봤다. 그동안 채소 섭취량이 너무 부족해 채소 위주의 장을 봤다. 호박과 가지는 너무 비싸서 사지 못하고 양배추와 풋고추, 돌나물, 콩나물을 샀고, 자주 먹는 두부와 냉면 육수, 그리고 떡국 떡과 곰탕 팩, 육개장 팩, 설렁탕 팩 등을 적당히 샀다. 상추와 양파는 이웃에서 받은 게 너무 많아 사지 않았다. 볕이 좋아 빨래도 했다. 베개와 매트리스 보호 패드, 티셔츠와 바지, 수건을 빨았고, 이사 오고 나서 한 번도 세탁하지 않은 식탁보도 빨았다. 유리로 덮인 밑부분은 때가 탈 일이 없었지만, 나머지 부분은 음식이나 물이 떨어져 더러웠다. 그 부분만 변색이 진행되고 있었다. 게다가 빨아도 접힌 모서리 부분의 때는 줄이 간 채 지워지지 않았다. 좀 밝고 단순한 색상의 식탁보를 하나 새로 구매할 생각이다. 20년이 넘은 식탁보니 사실 교체할 때도 되긴 했다.
방도 정리했다. 내 방에 있던 대형 텔레비전을 거실로 내놨다. TV가 있다 보니 책을 읽기보다는 자꾸만 TV 앞에 앉게 된다. 작은 방까지 끌어왔던 랜선도 정리했다. 속도를 측정해 보니 무선이나 유선이나 속도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물론 유선이 속도가 빠르긴 했지만, 내가 디자인이나 그림파일을 다루는 복잡한 일을 하는 게 아니어서 효용보다는 깔끔함을 선택했다. 오갈 때마다 랜선이 발에 걸려 신경 쓰였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스팀다리미로 바지의 주름을 폈다. 장롱 속에 오래도록 방치됐던 바지들은 제멋대로 단호한 주름을 갖고 있었다. 오후에는 두 봉지에 그득한, (나에게는) 엄청난 양의 상추를 꺼내 물에 씻었다. 한 시간쯤 채반에서 물을 거른 후, 상추 겉절이를 담갔다.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다양한 조리법이 올라와 있었다. 그중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재료로 할 수 있는 조리법을 골라 참고했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완성하고 나서 맛을 보니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나는 신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감식초를 한 숟갈 넣었더니 훨씬 더 내 입맛에 맞았다.
주부처럼 하루를 보냈다. 이런 종류의 분주함과 작은 성취감이 무척 좋다. 엄마가 물려준 부지런한 성정은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다. 가끔은 결벽으로 보일 만큼 정리와 청결에 대한 집착을 보이기도 하지만, 나는 이러한 습성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남의 삶의 영역에 들어가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술을 줄이니 두통도 사라지고 하루가 길다. 엄마가 계셨을 때 술을 줄이고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식들은 왜 늘 뒤늦은 후회를 하고 스스로 회한을 만드는지 모르겠다. 다음 주 토요일에는 부모님 묘역에 다녀와야겠다. 오후에는 주로 영화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