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5월 17일, 다시 흐리고 비 내리다

달빛사랑 2021. 5. 17. 00:20

 

오늘도 비 내렸다. 고집 센 아이처럼 내리지는 않았다. 오다 말다 했지만, 점심 때쯤에는 제법 굵은 비가 내렸다. 궂은 날씨가 사흘 연속 이어지고 있다. “웬 비가 이렇게 내린담” 하고 혀를 차던 동료들은 내리는 비를 보며 오히려 표정이 밝아지는 나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그건 나로서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흐리거나 비 내리는 날을 좋아하게 된 것은 연조가 깊다. 장마철이 되면 괜스레 기분이 들뜨는 나를 보고 정신감정을 받아보라는 지인도 있었다. 물론 농담이겠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비와 나 사이의 특별한 인연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한다. 혹시 비가 많이 내리는 8월에 태어났기 때문일까.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갈매기에 들렀을 때, 혁재 혼자 앉아서 술 마시고 있었다. 종우 형 말로는 낮부터 시작한 술이라고 했다. 어디서 마셨냐고 물었더니 신기시장 ‘이쁜네’에서 점심 때부터 마셨다고 했다. 종우 형은 “저 새끼 저러다가 몇 년 못 가. 길어야 3년이야.”라며 혀를 찼다. 나는 “형,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을……” 하며 말을 끊었다. 걱정이 돼서 한 말이겠지만, 면전에서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혁재가 술을 과도하게 마시는 건 사실이다. 게다가 술안주로 구운 소금을 찍어먹고 있으니 걱정할 만도 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혁재뿐만이 아니라 내 주위의 술꾼들 모두가 위험한 상태다. 나만 해도 이제는 막걸리 두어 병만 마셔도 취한다. 체력이 그만큼 약해진 것이다. 또한 피부 트러블이 잦고 혈색도 나빠졌다. 면역력이 떨어진 것이라고 누군가 말해줬다. 규칙적인 생활을 해도 건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나이인데 술 마시는 관성과 불규칙한 생활의 리듬은 젊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건강이 좋아질 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운동도 이전처럼 못하는 형국이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래서 혁재와의 술자리는반가우면서도 미안하다. 만나면 반갑고 반가우니 함께 마시는 건데, 그러면 또 건강이 나빠지니 걱정이 되고…… 딜레마도 이런 딜레마가 없다.

 

혁재와 각각 한 병쯤 마셨을 때 친구이자 형수인 조 모가 남편과 함께 들어왔다. 무척이나 역동적으로 사는 부부다. 그들 내외는 오늘 섬에 들어갔다 나오는 길이라며 아귀 6마리를 들고 와 주방에 넘겨줬다. 그중 한 마리를 갈매기 형수가 탕으로 끓여주었다. 조 모는 혁재와 나의 술값까지 계산해 줬다. 이럴 때는 친구가 아니라 형수가 확실하다. 혁재와 각각 두 병씩 마시고 조금 일찍 갈매기를 나와 우리집으로 왔다.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병을 마시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 조금 전 혁재는 집으로 돌아갔다. 지난번 들렀을 때 놓고 간 옷 봉지를 잊지 않고 챙겨주었다. 하지만 우산은 놓고 갔다. 혁재는 우리집에 올 때마다 뭔가 하나씩을 놓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