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종일 비는 내리고 나는 작은 방을 정리하고

달빛사랑 2021. 5. 16. 00:56

 

 

며칠 전 기온이 30도까지 올라가 흡사 한여름 날씨를 방불케 했을 때, 갑자기 닥친 더위를 두고 모두 환경파괴로 인한 이상 기후 현상일 거라고 한마디씩 했다. 5월 기온 섭씨 30도, 다른 어떤 이유로도 설명하기 어려웠다. 도시는 그렇게 사나흘 달궈졌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부터 흐려지던 하늘은 토요일 오전부터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비는 주말 내내 잠시도 쉬지 않고 한결같이 내렸다. 달궈졌던 도시의 빌딩 숲에서 ‘쉭쉭’ 수증기 뿜어져 나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리려고 주초에 그렇듯 날씨가 뜨거웠던 모양이다.

 

오늘도 빗소리에 잠을 깼다. 테라스에 내놓은 화초들이 수관을 활짝 열고 빗물을 받고 있었다. 빗소리에 잠을 깨면 늘 기분이 좋다. 공기가 깨끗하다고 해 문을 열어 놓고 잤더니 거실 바닥과 매트리스가 습기를 먹어 눅눅했다. 보일러를 돌리고 장판을 켜서 습기를 말렸다. 비가 왔지만, 모든 문을 활짝 열어 오랜만에 만나는 맑은 공기를 잔뜩 집안으로 들였다. 테라스에 고인 물을 빗자루로 쓸어내며 엄마 생각을 했다. 비 내리는 날이면 테라스 쪽을 문을 열고 한참 동안 말없이 밖을 내다보던 엄마. 안타깝고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몰려왔다. 서둘러 세수를 하고 아침 준비를 했다. 신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순두부찌개를 끓였다.

 

식사를 마치고 옷방을 정리했다. 쓰지 않는 삼단 매트리스를 치우고 상을 놓아 독서 공간을 만들었다. 희한하게도 서재를 겸한 내 방보다 그곳에서 책을 보면 집중이 잘 된다. 물건이 상대적으로 단출하기 때문일까. 동남향으로 창이 나서 늘 환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혹시 그 방에서는 숙면할 수 있을까. 이 집으로 이사 온 후 그 방에서 잔 적이 한 번도 없다. 생전 엄마는 그 방에서 늘 성경 공부하거나 낮잠을 주무셨다. 그곳은 엄마의 공간처럼 여겨졌기 때문에 그 방에서 잘 일이 없었던 거다. 지금은 그 방에 누워 있으면 엄마 생각날까 봐 잠을 잘 엄두가 나질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는 집중이 잘 되는 그 방을 자주 이용할 생각이다.

 

아직도 비는 이곳에 있다.

밤이 되도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장마처럼 길고 집요하게 비가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