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비 내린 월요일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새벽부터 잠을 설쳐 피곤했지만 비 때문에 기분 좋게 집을 나섰다. 같은 방 박 모 보좌관은 나와는 반대로 날씨가 도대체 왜 이렇게 칙칙하냐며 아침부터 투덜댔다. 같은 날씨를 놓고도 이렇듯 사람마다 결이 다른 감정이 만들어진다는 게 신기하다. 이해관계가 얽힌 일이나 정치적 판단이 요구되는 사안 앞에서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서로 다른 태도를 만들어 내며 다툴 것인가? 비는 내리고 그치고를 반복했다. 이슬비로 내리다 가랑비로 내리고 안개비로 내리다가 보슬비로 내렸다.
월요일은 시간의 발목에 쇳덩이 하나를 달아놓은 날이다. 수요일 금요일과는 다르게 시간의 발걸음이 무척이나 더디다. 점심을 늦게 먹었는데도 시간이 가지 않아 음악을 들었다. 수요일마다 전 직원에게 발송하는 고정 원고 하나를 지난주에 미리 작성해 놓았기 때문에 시간이 더욱 더디 가는 것 같았다. 보좌관실은 오전엔 한가했고 오후에는 붐볐다.
인권조례 관련해서 개신교 목사님들이 대거 교육청을 방문해 교육감과 면담했다. 동성애를 비롯해 소수자 항목에 불만이 많아 보였다. 사실 인권조례는 이미 보수적인 단체들의 문제 제기와 민원 때문에 대폭 수정하여 너덜너덜해진 상태다. 그들이 이 민망한 조례를 꼼꼼하게 읽어봤다면 오히려 교육청을 위로해줘야 했을 것이다. 그들이 가고 나자 이번에는 강화에 소재한 교육청 관할 폐교를 임대해 작업하던 강화 예술가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계약기간이 끝나 해당 공간을 교육청에서 사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항의 차 몰려왔던 것이다.
사실 교사들도 현재 근무 공간이 태부족한 상황이다. 새로 지을 계획은 있지만 건물이란 것이 하루아침에 올라가는 게 아닌 이상 완공까지는 교사들에게도 공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들의 행동은 (표면적으로 보면) 교육청 재산을 교육청 직원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것에 대해 임차인인 예술가들이 집단행동을 하고 나선 형국이다. 다만 나도 예술가로서 작업공간의 필요성에는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특히 가난한 예술가들은 그간 작업해왔던 공간이 사라질 경우 딱히 갈 곳이 없어지게 되니 절박한 상황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이렇다 할 합리적인 대안이 쉬 나올 수 없는 상황이라 더욱 안타까웠다. 여타 사안들은 직원으로서 철저하게 교육청 입장을 견지해 온 나였지만, 이번 예술가 건은 내심 예술가들의 뜻이 관철되었으면 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이런 내 모습은 도대체 팔이 안으로 굽은 건지 바깥으로 굽은 건지 판단이 애매하다.
교육청에서는 서너 달 전부터 일회용품 안 쓰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박 보좌관과 나는 매일 매의 눈이 되어 옥상 흡연실 주변에서 종이컵을 사용하고 있는 직원을 보면 눈칫밥을 주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종이컵을 가지고 올라오는 직원이 있다. 일반직으로 보이는데, 정말 말을 안 듣는다. 몇 대 쥐어박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