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엄마 없는 첫번째 어버이날

달빛사랑 2021. 5. 8. 00:37

 

 

생전에도 뭐 그리 살뜰하게 챙겨드린 건 없지만, 그래도 엄마 없이 맞는 첫 어버이날, 쓸쓸하다. 며칠 전 거실 서랍장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카네이션 배지 두 개를 꺼내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하나는 큰누나가 다른 하나는 교회에서 달아준 것이다. 세워진 화환 모양의 배지는 광택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평생 엄마와 아버지의 가슴에 몇 번이나 카네이션을 달아줬나를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을 빼면 별로 없는 것 같다. 성인이 되어서는 매년 돌아오는 어버이날에 용돈 몇 푼 전해드리는 걸로 마음의 부담이랄까 의무감이랄까, 아무튼 의례적인 행사를 치르듯 감사한 마음을 표현해 왔다. 그러면서 ‘노인들은 꽃다발이나 선물보다 현금을 좋아하셔’라며 스스로 합리화하곤 했다.

 

사실 부모님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꽃을 달아주거나 선물, 용돈을 주는 것보다 자식들이 번듯하게 제 앞가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난 부모님을 만족시켜드리기도 했고 크나큰 상처를 주기도 했다. 특히 엄마의 경우는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 나로 인해 마음졸이며 살아가셔야 했다. 그래서 엄마에게는 항상 나의 안위와 나의 미래가 기도의 우선순위였다.

 

실제로 지금의 내가 이나마 살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엄마의 기도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 엄마에게는 그러한 기도가 말년의 쓸쓸함과 삶의 고단함을 극복할 수 있게 해준 힘이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엄마의 기도 주제가 되어줌으로써 역설적으로 효도를 한 셈이라고 뻔뻔하게 합리화하곤 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아버지야 평생을 바람처럼 사셔서 자식들과 그리 애틋한 감정적 연대감을 형성하지 못하셨다. 하지만 엄마와는 나와 아내가 수배를 당하거나 감옥에 가 있던 몇 년을 빼고는 거의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나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기까지 했으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래서 엄마를 생각하면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엉킨 묘한 감정이 되곤 한다.

 

아들 말마따나 엄마와의 이별은 생각하기조차 싫었던 일이라서 그런지 막상 엄마의 죽음을 목격했을 때 무척이나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엄마 잃은 슬픔은 시차를 두고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더 묵직하게 나를 짓눌렀다. 결코 희석되거나 무뎌지지 않을 듯 집요했다. 물론 지금도 슬픔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다만 서너 달이 지나자 못 견딜 것 같던 빈집의 적요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숨을 쉴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심장도 안정을 되찾아갔다. 모든 감정을 희석하기에는 시간만큼 신통한 치료제가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엄마는 “나를 잃은 슬픔이 벌써 무뎌진다는 말이냐.”라고 하시면서 서운해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나로서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감정의 자정작용일 뿐 그리움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엄마는 이별 이전의 평온한 일상을 회복하는 내 모습에 뿌듯해하면 뿌듯해했지 결코 서운하게 생각할 분이 아니다. 오히려 다행이라 여기며 대견하게 생각하실 게 분명하다. 이건 엄마와 교감하며 살아온 내 심장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느낌이다. 앞으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나의 도리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엄마 없는 어버이날, 낯설고 마음 시리지만, 좀 더 좋은 모습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며 그리움을 달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