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잡생각과 습관에 선전포고하다

달빛사랑 2021. 4. 24. 00:12

 

절대적 적요(寂寥), 그 다다를 수 없는 상태에서 느끼는 정신의 즐거움을 나는 모릅니다. 적요 속에서 자신의 참모습과 만나기도 하고 돈오(頓悟)의 신비한 순간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만 나는 아직 그러한 경험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절대적 고독이 나는 두렵습니다. 말과 소리가 사라진 절대적 침묵과 고독의 무한 공간을 사색과 깨달음으로 채워넣기에 나는 많이 모자랍니다. 고독의 순간과 나를 뒤덮고 있는 적요의 공간에는 견디기 힘든 갖가지 상념만 들어차곤 합니다. 즐거운 생각보다는 가슴 철렁했던 생각, 모멸스러웠던 생각, 아쉬웠던 생각, 부끄러웠던 생각, 화가 났던 생각들만 몰려들곤 합니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도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켜놓곤 합니다. 이런 습관이 고착되어 소리 없는 공간을 더 못 견뎌 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겁니다. 고질적인 불면도 아마 그 때문이겠지요. 눈을 감으면 몰려오는 반갑지 않은 상념들과 매번 싸워야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고독과 적요함 속에서 정신적 만족을 느끼고 생각을 정리하거나 마음의 평화를 느끼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정작 고독과 친숙한 것은 난데, 그 고독을 힘들어하고 있으니, 고운 정이 든 게 아니라 미운 정이 든 걸까요. 아닙니다. 고독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고독한 순간에 찾아드는 잡생각을 싫어할 뿐이지만, 잡생각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그 고독은 진정한 고독이 아니겠지요. 그래서 생각합니다. 이제 고독과 적요 속에 들어 잡생각과 큰 싸움을 벌여야 할 때라고 말입니다. 소름 끼쳤던 경험들은 나를 아주 겁쟁이로 만들어 놓은 듯합니다. 홀로 고즈넉하게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조차 그냥 놔두지 않는다니까요. 잡생각이 두려워 적요와 고독의 잔잔한 시간 안에 들지 못하니 잡생각들은 살판이 난 거지요. 잡생각들은 나를 길들였다고 생각하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복잡한 걸 싫어하게 만들고, 골치 아픈 걸 피하게 만들고, 참혹한 현실에 등 돌리게 만들고, 구체적 현실을 외면하게 만들고, 환상과 잔재미만 좇도록 집요하게 길들여 왔다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길들이기 쉽지 않은 자의식이라는 게 있습니다. 길이 든 습관도 무섭기는 합니다만 언제든지 그 습관을 떨쳐버릴 수 있도록 채근하는 자의식도 만만한 건 아니지요. 그 자의식이 작동하여 현재의 모습을 부끄럽게 만들고 ‘이건 아니잖아’라는 각성을 하게 하여 잡생각이 만든 습관과 두려움을 떨쳐내는 거, 그게 지금 내가 가장 바라는 일입니다. 그러다 보면 술과 담배와 삿된 욕망에 찌든 내 몸과 마음을 스스로 구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대청소를 해야겠습니다. 다소 강박적인 루틴이긴 합니다만, 뭔가 새롭게 마음을 다잡을 때 나는 청소를 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