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그리움조차 제게는 힘이 됩니다
당신 없는 봄날이 천연덕스럽게 흘러가고 있어요. 아직도 당신의 부재가 낯설어 홀로 있는 시간이면 자주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는 합니다. 그날 새벽, 그토록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당신을 보낸 이후 제 마음속에는 죄의 짐을 힘겹게 지고 있는 사내 하나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당신의 소박한 옷들이 들어찼던 서랍장에는 이제 제 옷가지들만 가득합니다. 성구가 적힌 액자는 벽에 못을 박고 걸어놓았고 거울과 달력은 여전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욕실의 거울을 보며 이를 닦거나 세수를 하거나 면도를 할 때도 불현듯 당신이 생각나 한참을 거울 앞에 서 있곤 합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당신이 그 안에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득해지기 때문입니다. 반찬을 만들거나 밥상을 차릴 때도 당신의 참견이 너무 그리워 당신의 말투를 흉내 내며 혼잣말을 하곤 합니다. 새로운 가전제품을 사들이거나 그럴듯한 반찬을 만들었을 때나 주변의 칭찬을 받았을 때도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당신입니다. 화초가 꽃을 내밀었을 때는 작고 화사한 그 꽃이 당신의 전령인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서 말을 걸곤 합니다. 당신이 남긴 빈자리마다 나는 내 물건을 놓거나 넣어두었지만 실제로 그곳에는 내 쓸쓸함과 그리움만 차곡차곡 들어차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견디기 힘든 이 쓸쓸함과 그리움을 온전히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당신 생각에 자주 쓸쓸해지고 많이 힘들겠지만, 그것은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이 깊었으므로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힘겨움이라 생각할 작정입니다. 그러니 자주 내 마음속 사내를 울게 해 주세요. 자주 나를 찾아와 당신과 함께했던 추억들을 떠올리게 해 주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독한 그리움조차 제게는 힘입니다. 당신을 잊고 지내는 평온함보다 당신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이 익숙한 쓸쓸함이 나는 훨씬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