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나ㅣ"내 자리가 아니면 술 마시지 않아!"
청사에 도착하고 오전 업무를 시작하는 9시쯤부터 비 내리기 시작했다. 추적추적 처연하게 내리지 않고 주룩주룩 봄비답게 장하게 내렸다.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처럼 비 내리는 날이면 항상 비와 나 사이의 알 수 없는 인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추억과는 다소 결이 다른 운명 같은 인연. 나는 아마도 선천적으로 비와 관련된 유전자를 타고 난 게 분명하다. 그 이전에는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 기억에 의하면 비와 나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다고 느낀 것은 고등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부터 비만 내리면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상태가 되곤 했다.
고등학교 3학년, 입시에 목숨을 걸던 그 중요한 시절에도 비 내리는 날이면 동인천역에서 축현학교 앞을 지나 자유공원 쪽으로 이어진 가장 곧고 빠른 등굣길을 거부하고 신포동까지 걸어간 후 홍예문을 넘어 공원까지 올라갔다 학교에 가느라고 지각하기 일쑤였다.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조례가 끝나고 1교시 수업 종이 울리기 직전이었지만, 다행히 나의 성정을 이해해 주신 담임 선생님께서는 체벌을 하거나 벌점을 주시지는 않았다. 교무실로 불러 "비 많이 맞았어? 무슨 생각하며 걸었어? 앞으로 늦지 않도록 노력해 봐."라고 말씀하실 뿐이었다. 국어 교사였던 나의 담임 선생님은 서울대를 나오셨고 수업도 재밌고 쉽게 하셔서 학생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다. 게다가 기타도 잘 치시고 노래도 잘하셨다. 대광고등학교 중창단 출신으로 알고 있다. 얼마 전에는 등단하셔서 시집도 출간하셨다. 기억도 가물가물하실 텐데 제자인 나에게 사인한 시집까지 보내주셨다. 그때는 선생님이 얼마나 특별했는지 잘 몰랐지만 세월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권위주의 시절, 선생님과 같은 교육철학을 지닌 고3 교사가 군사문화가 팽배했던 당시의 교육현실을 견뎌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로서는 사춘기를 마감하고 성인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선생님과 같이 소년의 감성을 이해하고 보존해주려는 교사를 만난 게 정말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훗날 내가 시인 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당시 고약한(?) 버릇을 가지고 있던 나를 마음으로 이해해주신 선생님의 속 깊은 배려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퇴근길에 갈매기에 들렀다. 월요일이었고, 비가 내렸기 때문에 그것은 필연이었다. 비 때문인지 6시가 되기 전인데도 손님이 많았다. 알고 있는 얼굴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하지만 늘 내가 앉던 자리에 종우 형의 친구들이 이미 앉아 있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미련없이 술집을 나왔다. 빈 자리가 있었으나 앉지 않았다. 늘 그렇듯 익숙해진 루틴이 깨지면 나는 낯설어 한다. 적어도 단골집 갈매기에서만큼은 늘 앉던 내 자리가 아니면 도무지 술 마실 생각이 생기질 않는다. 그렇다고 근처 다른 술집에 가지도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빈자리가 있는데 서운하게 왜 그냥 가요."라는 종우 형의 전화를 받았지만, "낯설어서요. 비 오는 날에는 손님도 많을 텐테, 나 혼자 자리 차지하고 있기도 미안하고."라고 말하고 전철역으로 향했다. 월요일, 그것도 비가 내리는 날, 술 마시지 않고 곧장 집으로 돌아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종우 형은 아마 속으로 나를 유난스럽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술꾼에게도 포기할 수 없는 나름의 원칙이 있는 법이다. 그건 마음만 그런 게 아니라 몸이 기억하고 있는 원칙이기 때문에 쉽게 타협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비는 참 예쁘게 내리고 있다. 내 자리가 아닌 곳에서 술 마시기를 거부한 일, 전혀 미련이 남지 않는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