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준 건 사랑을 준 거예요
후배 오혁재나 조구 형님이 간간이 합석할 뿐 거의 혼자 마시는 술자리에 어제는 두 명의 지인이 시차를 두고 앉았다 갔다. 먼저 찾아온 사람은 친구 김 모 기자, 늘 그렇듯 술이 얼근하게 취해 있었다. 상당히 똑똑한 친구지만 맨정신 상태의 그를 보기란 미세먼지 없는 봄날처럼 무척 드물다.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거나 패악을 부리지는 않는다. 다만 술만 마시면 노래방에 들어가 도우미들과 시간을 보내는 나쁜 버릇이 있다. 빠듯한 월급에 과도한 지출을 하게 되는 것도 문제려니와 간혹 물건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심각하게는 영혼이 황폐해진다는 것인데, 나는 만날 때마다 그러지 말라고 종용했지만, 알코올보다 훨씬 그 습관에 침윤된 탓인지 좀처럼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남의 사생활에 이래라저래라하는 건 월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조언하기를 관뒀지만, 친구로서 여간 안타까운 게 아니다. 어제는 임 모 선배와 근처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간다는 말도 하지 않은 채 와버렸다며 소주 한 병을 시켜서 두어 잔을 먹다가 가버렸다. 아마도 노래방을 찾아갔을 것이다. 아내와도 사이가 좋지 않아 별거하고 있는 그에게 어쩌면 노래방 도우미는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해소하게 해주는 따뜻한 말벗일 지도 모른다. 빈집의 적막함이 얼마나 두려운지를 아는 나는 일탈로 보이는 그의 행동을 이해하기로 했다. 어쩌겠는가.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듯 그가 좋지 않은 버릇에 침윤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연민의 마음을 거둘 수는 없지만……. 모쪼록 그가 음습한 지하세계에서 벗어나 지상의 햇살 아래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어긋난 관계들도 회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두 번째로 찾아온 지인은 창작하지 않는 예술가 임 모 선배다. 그는 화가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않는다’인지 ‘못한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의 작품을 만나 본 지 십수 년이 넘는다. 그러나 그는 늘 예술과 문화판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실력보다 열정이 훨씬 크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부족한 실력으로도 문화판에 머무를 수 있는 건 그가 다행히(?) 순수하기 때문이다. 그는 늘 뭔가를 기획하고 시도해왔지만, 결과는 매번 참담했다. 부족한 실력이 매번 검증된 셈인데, 그래도 사람들이 그를 외면하거나 배척하지 않는 건 그가 사익을 탐하거나 앞뒤가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앞서 다녀간 기자 친구와는 다른 결의 감정으로 그를 연민한다. 그는 함께 술 마시던 김 기자가 갑자기 사라져버리자 술집을 나와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잔뜩 구매한 후 갈매기에 들른 것이다. 요즘 라캉과 들뢰즈에 관심이 많다며 구매한 책들을 보여주다가 문득 “문 가오(그는 나를 이렇게 부른다), 갖고 싶은 책 있으면 말해. 그럼 한 권 줄게.” 하면서 제목이 보이게 책을 들어 보였다. 모두가 하나같이 두툼한 책들이었다. 두 권은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이었고, 나머지 세 권은 갖고 있지는 않지만, 제목은 들어 알고 있는 책이었다. 받아봐야 읽지 않을 게 뻔한 두 권은 패스하고 그나마 읽을 만한 책 한 권을 가리키며 “그거 주세요.” 했다. “그래? 그럼 줄게. 가져가.” 하며 책을 내 앞으로 밀어놓았다. 나는 “이왕 주는 거, 사인(sign)해서 주세요.” 했더니 “그러지 뭐.”하며 특유의 글씨체로 사인을 한 후 되돌려줬다. 졸지에 책 한 권을 얻게 되었다. 술값을 계산하고 먼저 일어나려고 했더니, “내가 계산할게. 계산하지 마, 나 법인 카드 있어.” 하며 술값도 계산해 주었다. 책이 오가는 술자리, 참 오랜만이다. 다소 즉흥적인 쇼맨십의 발로였다 하더라도 거친 말이 오가고 남의 뒷담화나 하는 술자리보다 얼마나 건전한가. 아무튼 주는 게 받는 것보다 행복하다는 (나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말이다) 말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선물은 받는 게 좋다. 아무튼 기자 친구로 인해 우울했다가 키다리 아저씨 같은 선배 때문에 다소 (간사하게) 마음이 풀린 술자리였다.
오늘은 미세먼지 농도가 ‘보통’ 수준까지 완화되었다. 아침에 잠깐 테라스에 나가 바깥 풍경을 지켜본 이후 종일 ‘자다 깨다 먹다’를 반복했다. 자주 엄마 생각이 나서 쓸쓸해지기 일쑤였다. 접란 작은 뿌리를 물병에 옮겨 수경을 시작했다. 뿌리 내리고 꽃 피우기까지 응원하며 지켜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