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흐르는 날들⑧ : 기억의 역습
달빛사랑
2021. 3. 15. 00:08
봄볕이 엄마 방과 거실을 비추면 숨어 있던 먼지가 모습을 드러내듯 엄마와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꽃구경도 못 가고 집안에서 텔레비전을 보시거나 성경책만 읽고 지내던 엄마의 외로움이 자꾸만 느껴진다. 외로움이라는 피륙으로 촘촘하게 직조되던 엄마의 봄날, 그 허다한 시간 동안 나는 엄마의 외로움을 외면한 채 나만의 시간 안에 머물곤 했다. “또 한잔 걸치셨군.”이라든가, “아이고 오늘은 웬일일까. 일찍 들어왔네.”, “나는 이제 하나도 걱정 안 해.”라는 말들이 그립다. 내 방 재떨이를 깨끗하게 비우고 젖은 티슈를 한 장 깔아 책상 위에 올려놓던 엄마, 깨끗하게 씻은 과일을 접시에 담아 귀가 전인 내 책상에 올려놓던 엄마, 반바지조차 다리미로 판판하게 다려서 각을 잡아놓던 엄마, 당신 몫의 먹을거리를 늘 내게 양보하던 엄마, 내 앞에서는 힘든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엄마…… 그 엄마 모습이 너무도 그리워 가슴이 턱턱 무너지는 시간, 볕이 방안과 거실에 잠시 머물다가는 바로 그 시간. 이 봄을 평온하게 보내기는 글러 버렸다. 하긴 어디 봄뿐이겠는가. 각각의 계절마다 엄마와 얽힌 기억들은 부조처럼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을 테니, 모든 계절이 예사롭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