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술자리가 재미가 없다

달빛사랑 2021. 3. 5. 00:47

 

마 전부터 술자리가 흥이 나질 않는다. 체력이 약해졌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고 다음으로는 취기가 왔을 때의 기분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쉬 취기가 찾아들기도 하지만 취했을 때의 컨디션이 개운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대개 취했을 때 찾아드는 쓸쓸한 감정을 즐기는 편이다. 격동된 감정은 평소와는 다른 생각을 하게 해주고 팍팍했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시에 관한 모티브도 취해서 홀로 돌아오는 길에 얻는 경우가 많다. 나 자신을 연민하거나 스스로 다독일 때 감정은 고무되고 다양한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폭죽처럼 터진다. 글이 안 될 때 가끔 집에서 혼자 맥주나 막걸리를 마시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술을 마셔도 마음이 고양되지 않는다. 체력이 안 따라주니 몸만 불편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세수만 하고는 이내 쓰러져 잔다.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희한하게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술 약속도 더 많이 잡힌다. 체력은 회복되지 않았는데 술자리가 반복되니 그게 또 부담되고…… 악순환이다.

 

이번 주는 화수목 3일을 연일 근무해서 오늘은 출근하지 않았다. 퇴근 시간 무렵이 되자 후배 시인 손 모와 심 모, 고등학교 동창 박 모 등에게 술 마시자는 연락이 왔다. 하지만 모든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집에 있는 날이나 퇴근해서 일단 귀가하면 좀처럼 외출하지 않는다. 집에 있거나 집에 일찍 들어온 날에는 그 나름의 루틴에 의해서 시간을 보낸다. 외부에서의 연락은 그 루틴을 깨는 것이고 그래서 불편하다. 물론 젊은 시절에는 술자리에서 누가 부르면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합류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럴 만한 마음의 여유도 체력도 안 된다. 엄마와 오래 함께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종일 나를 기다린 나이 든 엄마를 빈집에 홀로 남겨두고 들어오자마자 포르르 다시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기란 내 성정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집에서 쉬는 날에는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같이 음식도 만들어 먹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 습관이 몸에 배서 일단 집에 들어오거나 쉬는 날에는 좀처럼 밖에 나가질 않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체력이 떨어졌다는 것과 술에 대한 집착이 전보다 많이 떨어졌다는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사랑도 주량도 한 인간이 자신의 생에서 감당할 수 있는 총양은 정해져 있다는, 말 그대로 총량의 법칙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사랑은 모르겠지만, 술은 살아오면서 참 많이도 마셨다. 지금은 내 총량 중 내 몸에 남아 있는 잔여량을 소화하기 위해 몸과 마음이 속도 조절에 들어간 것이란 생각이다. 남은 양이 얼마 안 되니 술을 끊지 못할 바에야 소량씩 나눠서 마시라는 말이겠지. 몸만이 그런 게 아니라 마음마저 동조하고 나섰다는 확신이 든다. 확실히 술 마시고 느끼는 흥도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했던 시절에는 돈이 없어 못 마시고, 여유가 있을 때는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아 못 마시니, 삶이란 참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