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아들을 보내고ㅣ혁재의 설날

달빛사랑 2021. 2. 13. 00:10

느지막이 일어나 아들과 라면으로 해장을 했다. 나는 머리가 약간 아팠지만, 아들은 멀쩡해 보였다. 젊은이의 체력은 역시 나에 댈 게 아닌 모양이다. 점심까지 먹여 보내고 싶었지만, 아들이 가봐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했다. 이틀 동안 함께 했던 아들이 집을 나설 때 왜 그리 마음이 허전한 것인지……. 아마 엄마도 손자를 보낼 때 이런 마음이었을 거다. 다시 만날 때까지 홀로 견뎌야 하는 쓸쓸함을 생각하면서 아쉬움에 가슴이 휑해지셨을 것이다. 자식들은 이렇듯 뒤늦게서야 부모의 마음을 하나하나 확인하게 된다. 생전에 그 마음을 헤아렸더라면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을 텐데, 영별하고 나서야 비로소 후회하게 되는 건 무엇 때문일까.

 

아들을 보내고 나서 제수씨가 바리바리 싸준 김치와 음식들을 정리했다. 당분간은 장을 보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잡채와 갈비와 산적, 대왕문어 다리 하나, 김치 한 통, 집에서 밥을 많이 먹지 않는 나에게는 한 달은 족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아들을 위해서 사놓은 맥주도 그대로 남아있고, 소주도 세 병이나 있다. 냉동 교자만두 한 봉지와 교육청에서 명절 선물로 준 조미김도 한 상자가 그대로 있다. 누나가 가져다준 쌀떡도 있고, 곰탕 팩도 5개나 있다. 엄마가 드시던 즉석 죽도 10통이 남아있다. 3월까지는 그럭저럭 생활할 수 있는 양이다. 후배 진현이가 준 꿀은 모두 아침저녁 차를 타서 마셨다. 엄마가 한 병 반을 드셨고 내가 한 병 반을 먹었다. 효운이가 보내준 도토릿가루는 설 전에 묵으로 만들어 놓았다. 간을 안 해서 그런지 약간 싱거웠지만, 먹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양념간장을 찍어 먹으면 되니까. 냉장고가 그득하면 홀아비는 마음이 놓인다.


저녁에 혁재의 전화를 받았다. 설 잘 보냈느냐면 안부를 묻던 혁재는 “난 명절 지나면 병원에 가 봐야 할 거 같아요.” 하면서 사진을 보냈는데, 사진상으로 본 그의 종아리는 무척 심각한 상태였다. 오금부터 복숭아뼈 위까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혁재는 “근육이 파열된 거 같아요. 아무것도 아니에요.”라고 말을 했지만, 걱정스러워 “무조건 병원에 가봐야 해. 그리고 일단 얼음으로 찜질해서 부기를 완화해라.”라고 말을 해주었다. 혁재는 “알겠어요. 고마워요. 형.”하고는 전화를 끊고 잠시 후 얼음으로 찜질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 그리고 여기저기 자신의 증상에 관해 물어봤던 모양이다. “별거 아니래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래요.”라는 문자도 함께 보냈다. “그럼 다행이지만, 그래도 찜질은 계속해서 해야 해.”라고 답장을 했다. 아마 혁재에게도 올 설은 낯선 경험일 것이다. 일 년 365일 멈추지 않고 술을 마시는 혁재가 올 설에는 적어도 일주일은 무알코올 상태를 유지해야 하니, 이걸 불행이라고 해야할 지 다행이라고 해야할 지 판단이 안 선다. 이번 기회에 혁재도 자신의 몸상태를 돌아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