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내 고향은 인천이 맞습니다만.....
내 글은 어디선가 막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대단한 것에 대한 강박이랄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소한 것, 누구나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하는 걸 쉽고 담백하게 써내지 못합니다. 힘이 들어가 있다고나 할까. 사실 글이란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인데, 그걸 해내지 못하니 답답할 수밖에요. 이건 아마도 내가 살아온 경험과도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내 의식이 가장 영민하던 시절부터 무거운 글을 보고 무거운 분위기에서 무거운 회의를 하고 간혹 글을 쓰게 될 때도 무거운 글만 쓰다 보니 형성된 강박이란 생각입니다. 하긴 그때 우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위험 속으로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갈 때였으니까요. 연애 이야기, 술 이야기, 당구 이야기, 쇼핑 이야기, 라이트 소설이나 감상적 시들을 이야기하거나 그것에 관해 글을 쓰는 건 시대와 역사가 부여하는 준엄한 사명을 외면하는 것으로 여겨졌으니까요. 그래요. 우리는 아니 나는 너무 무겁고 진지했던 겁니다.
내가 글을 쓰면서 느끼는 또 하나의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유년을 온통 전원적인 분위기 속에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경험과 정서가 전혀 내 글쓰기에 반영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흙밭에서 구르며 놀았고 절기마다 계절마다 그때 행해지던 전통 놀이를 하고 놀았으며 자치기, 깡통 차기, 비석 치기, 구슬치기 등은 일상이었는데 그때의 기억은 있는데 그것이 글로 형상화된 적은 거의 없다는 것이지요. 여름에는 개울가에서 발가벗고 수영했고, 방아깨비를 잡아 구워 먹었으며 낚싯대를 직접 만들어 망둥이 낚시를 했지요. 겨울에는 썰매도 직접 만들어 방죽을 누볐고 칡뿌리를 캐서 질겅질겅 씹고 다녔습니다. 싱아와 삘기, 까마중은 우리의 간식이었으며 가끔은 친구네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오이나 토마토를 서리해서 먹기도 했지요. 학교 미술 준비물인 찰흙조차 나는 원적산 계곡에 가서 자연 채취해서 가져갔고 수수깡이야 말할 필요도 없이 집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지요. 사람이 죽으면 상여가 나갔고 밭일 논일에는 이웃 간 품앗이가 일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그 소중하고 아련한 정서가 모두 어디로 증발해 버린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물론 기억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그런데 그 생생한 기억이 글로, 문학으로 생성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건 시대와 역사에 대한 강박으로도 설명하기 무척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렇다고 도시 생활을 경험하기 시작한 중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이 문학적으로 표현된 적이 있느냐면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결국 전원생활을 경험했던 유년의 기억도 도시 생활을 경험했던 청소년 시절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질 못했다는 말인데, 이게 무척 아쉽습니다. 동료 시인 작가들의 경우 자신의 고향이 문학의 근거가 되고 힘이 되고 끝없는 자양이 되곤 하는데 나는 고향 인천에 관한 작품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요즘 고향의 정서를 표현한 작품을 통해 그 지역의 문화상품으로 주목받는 시인 작가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그들 자신도 관(官)의 관심과 구체적인 물적 지원에 ‘맛’을 들여 의식적으로 고향을 노래하며 감성팔이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만 그것에 대해 수요와 공급 원리에 입각한 자본의 논리에 굴복한 것 아니냐며 대놓고 힐난할 수 없는 게 제 처지라는 생각입니다. “하고 싶으면 너도 해 봐. 고고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잖아.”라고 말한다면 저는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점점 유년의 기억은 희미해지겠지요. 희미해지는 기억을 억지로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다 보면 기억이 어느 순간 윤색될 수 있을 겁니다. 그건 기억을 기반으로 한 허구이지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닙니다. 그래서 안간힘을 쓰려고는 안 할 생각입니다. 다만 인천에 관해서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노동운동도 인천에서 했고 잠시나마 사업도 인천에서 했으며 최근까지 문화예술 활동도 인천에서 했기 때문에, 인천에 관해서는 앞으로 깊이 있게 고구해 볼 생각입니다. 이곳에 나의 친구들이 여전히 있고 내가 자주 가는 단골 술집도 있잖아요. 게다가 현재 나는 인천의 교육관청에서 공무를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서른 살 이후의 인천과 관련해서는 그게 어떤 형식이든 문학적인 글로 남겨볼 생각입니다. 아마도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제가 쓴 시 중에 인천 관련 시가 서너 편이 있는데, 그게 모두 10년 안팎에 쓴 시들이거든요. 그러니까 모두 마흔 살 이후에 쓴 인천 시들이라는 말이지요. 일부러 ‘써야겠다’라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쓴 작품들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연구 논문이 아닌 이상은 인천을 형상화해야겠다는 목적의식을 내세우진 않을 겁니다. 내 삶이 자연스레 인천에 녹아들어 있고 내가 죽어서 묻힐 곳도 인천이기에 인천을 궁극의 삶의 동반으로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그에 걸맞은 인천의 시와 글이 나오겠지요. 그날을 기대해 봅니다. 떨어지는 체력과 흐려지는 기억이 아쉬울 뿐입니다. 일모도원(日暮途遠)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