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하기의 어려움
오후에 후배 보좌관이 전화를 걸어 “특보님 오늘 저녁 시간이 어떻게 되세요. 혹시 다인아트에서 하는 출판 관련 회의에 오실 수 있나요?” 하고 물어왔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난 굳이 그 모임에 갈 필요가 없을 거 같은데요. 나중에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도울게요.” 하고 거절했다. 날이 무척 추웠고, 장소도 멀었으며, 사전에 전혀 언급이 없던 회의였다. 후배 보좌관은 다인아트 윤 대표로부터 내가 도서 편찬이나 교열 윤문 관련 일을 깔끔하게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거절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나갔을 게 분명하다. 나는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성정의 소유자다. 그간 하기 싫은데도 인정 때문에 승낙하고 치른 일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남들은 정 많고 배려심 깊다고 생각하겠지만 그저 우유부단한 성정일 뿐이다. 물론 도움받은 상대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올 때는 나도 뿌듯한 마음이 되곤 했다. 그러나 하기 싫은 일을 하며 밤을 꼬박 새우다 보면 ‘내가 뭣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거지?’ 하는 자괴감이 밀려오곤 한다. 능력 밖의 일을 떠맡아 놓고 끙끙대는 것은 내 정신 건강에도 좋지 않지만, 상대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 즐겁지 않은 일을 하는데 어찌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깨끗하게 거절했다면 상대방은 나보다 능력 있는 누군가에게 그 일을 맡겼을 것이 아닌가. 아무튼 앞으로는 싫은 건 싫다고 딱 잘라 거절할 생각이다. 그게 서로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말 절박해서 내 도움이 필요한 경우는 어쩔 수 없겠지만…… 다만 이 경우 그 절박함의 진정성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래서 다시 다짐은 원점으로 돌아가곤 하는 것이다. 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