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인천민주화운동센터 자문회의

달빛사랑 2020. 11. 26. 03:31

 

새벽에 깼다. 뭔가를 하기 위해서 깬 게 아니라 그냥 자다가 눈이 딱 떠졌다. 가습기 입구에서 분무되는 수증기가 스탠드 불빛을 받아 벽면에 어룽어룽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지금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입동과 소설이 지났으니 이제는 겨울이라 해야 하겠지만, 몇몇 거리의 나뭇잎들이 여전히 나무를 떠나지 못한 채 마지막 생의 빛깔을 소진하고 있으니 여전히 나에게는 '남은 가을'이다. 사계절 중 유독 가을에 더욱 강한 애착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한 계절이 저물 때, 내 생의 한 시기도 함께 저무는 것이기에 가는 계절에 대한 상련의 정서를 느끼게 되는 것일 뿐이다. 또 기억은 휘발성이 있는 정지된 시간의 응고물이기 때문에 한 계절을 지나며 겪은 좋지 않은 기억들이 영원히 머물지는 않는다. 그래서 다시 보지 않을 것처럼 "퉤!" 하고 침을 뱃고 돌아서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와 발디딘 계절 속에 머물며 울고 웃게 되는 것이다. 겨울이 오면 또 "안녕, 겨울!" 하고 새로운 계절에게 환하게 인사할 게 분명하다. 그러다 겨울이 갈 때쯤이며 다시 겨울을 위한 이별가를 부르고 있겠지. 그래도 여름은 좀 그렇다. 내가 만약 가는 여름에게 아쉬움을 느낀다면 계절로서의  '여름'에게 느낀 아쉬움은 분명 아닐 거다. 여름 속에서 만난 좋은 시편, 뜻밖의 만남, 크고 작은 성취, 엄마의 건강 등등 계절과는 무관한 일련의 설렘 때문일 뿐. 아무튼! 자다가 문득 깬 새벽에 이렇듯 너스레를 떨고 있는 걸 보면, 불면이 무섭고 쓸쓸한 게 무섭고 한 계절을 성취없이 떠나보내는 게 무서운 모양이다. 본래 나는 두렵거나 쓸쓸할 때, 주절거리는 버릇이 있다. 맥락 없이 글을 쓰는 데는 이골이 난 사람이니까. 시간과 종이, 혹은 시간과 키보드만 있다면 나는 며칠이고 글을 쓸 자신이 있다. 단, 예술작품으로서의 글이나 청탁에 응하는 목적이 있는 글 말고, 말 그대로 '맥락 없는 글' 말이다. 내가 겪은 예사롭지 않은 경험만 풀어놔도 며칠은 갈 걸. (3시 2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