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두 자매
주말을 너무 룰루랄라 하며 보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뭐 꼭 하루를 반드시 의미 있게 보내야 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어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오전에는 볕이 좋아 묵은 빨래를 했다. 빨랫줄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빨래였다. 밥이 모자랄 것 같아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된장찌개를 끓이려고 재료를 꺼내놓고 있을 때, 자형 내외가 교회 가는 길에 엄마를 보기 위해 잠깐 들렀다. 자형은 잠시 앉아 있다가 성가대 연습하러 간다며 교회에 갔고 큰누나는 집에서 엄마와 함께 있었다.
내 방에 앉아 열린 문으로 두 분의 대화를 듣고 있으려니 그분들의 대화는 대부분이 신세 한탄이었다. 누나가 푸념을 늘어놓으면 엄마가 맞장구치거나 자신의 푸념을 늘어놓는 식이었다. 누나가 “왜 나는 동생(작은누나)처럼 건강하지 못하고 맨날 비실거리는 건지 모르겠어.”라고 말하자 엄마는 “너 어릴 때는 가난했잖아.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고……. 그러니 몸이 부실할 수밖에 더 있어?”라고 말씀하셨다. 큰누나와 작은누나의 나이 차이는 고작 두 살, 엄마가 말하는 ‘그때’의 가난은 작은누나라고 해서 피할 수 있었던 건 아닐 것이다.
사실 얼굴이 예쁘고 새침한 성격에다 욕심도 많았던 큰누나와 공부를 잘했고 뭐든지 스스로 해결하는 적극적 성격의 작은누나 사이에는 우애 말고도 묘한 경쟁심이 있었다. 두 분이 가끔 말싸움할 경우, 어린 내가 보기에도 엄마는 늘 큰누나의 역성을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건 차별이었다기보다는 (아들이든 딸이든) 큰 자식에 대한 맹목의 믿음이자 갈등 조율에 미숙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노골적으로 큰누나를 편애한다. 매일 골골대는 자식이 안쓰럽기도 할 것이고, 어렸을 때부터 형성해 온 모녀 전선이 세월이 가며 고착됐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작은누나는 엄마를 살갑게 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특별한 악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녀만의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고 그녀만의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뿐이다. 엄마도 건강하실 때는 작은누나의 그런 ‘태도’에 별로 개의치 않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사소한 것에도 서운해하기 시작했다. 하긴 누구나 자신에게 살갑게 대해주는 게 좋아하지, 매사에 톡톡 쏘아붙이듯 말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가끔 보면 작은누나는 마치 ‘나는 어린 시절부터 홀로 모든 것을 해결했을 뿐 특별하게 엄마에게 빚진 거 없어’라고 항변하는 것 같다. 물론 그녀가 살아온 삶의 이력 속에는 만만찮은 굴곡들이 많다 보니 세상에 대한 방어심리가 그런 식으로 까칠하게 표출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로서는 두 분 모두에게 연민이 인다.
오늘 큰딸과 엄마는 많은 대화를 나눴다. 예배를 마친 자형과 작은누나는 교회에서 만나 함께 집에 왔다. 작은누나는 엄마를 보자마자 “맨날 누워만 있으면 더 추레해지는 법이야. 일어나서 운동도 하고 걷기도 하고 그래야 빨리 낫지.” 하고 평소처럼 한마디 했지만, 그 말속에는 전혀 악의가 없었다. 누나의 말 때문인지는 몰라도 누워있던 엄마는 일어나 앉았고, 모처럼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점심도 함께 먹었다. 엄마는 그런 왁자함이 싫지 않은 모양인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웃었고 밥도 많이 드셨다. 지지고 볶고 싸워도 가족은 함께 있을 때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관계가 발현되는 것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 시간이었다. 세 분이 돌아가고 나서 문득 이렇듯 엄마가 좋아하시는 걸 안다면 자주는 아니더라도 일주일이나 열흘에 한 번씩은 집에 들러 함께 식사하자고 제안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