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그때는 그랬지

달빛사랑 2020. 9. 15. 06:35

가끔 한두 해 위 선배들을 만나 대화하다 보면(이를테면 오늘 같은) "우리가 어렸을 때는 다소 무모했지"란 표현을 (겸양이나 성찰이 아닌) 자조적으로 자주 쓴다. 그리고 대체로 그 '어렸을 때'란 대학시절(구체적으로는 학생운동시절)을 말하는 것인데, 그때마다 나는 저항감을 느낀다. 그들이 돌고 돌아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고... 음.... '우리'는 그 '어렸을 때' 세상을 바꾸고자 했고, 진지했고, 그 진지한 실천 행위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다. 적어도 그때 '우리'는 혁명가였다. 따라서 정제되진 않았지만 그때의 혈기는, (선배들의 발화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부끄러워하고 부정할 일은 결코 아니다. 다만 폐기해야 할 오류와 보존해야 할 합리적 핵심은 변별해야 하겠지만....


오전 근무만 하고 돌아왔다. 오늘은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지만 보좌관 회의가 있어서 사무실에 나갔다. 엄마는 오늘 길병원으로 진료받으로 가는 날이다. 지난달 받은 치매 검사 결과도 오늘 나온다고 했다. 궁금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동료 보좌관들이 밥 먹으러 가자고 했지만 나는 그냥 집에서 먹겠다고 하고 돌아온 것이다. 집에 도착했더니 엄마는 곤하게 주무시고 계셨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외출할 일이 없다가 근 한 달 만에 병원을 다녀와서 피곤했던 모양이다. 세탁기에는 세탁된 빨래가 그대로 있었다. 일단 빨래를 널고 식사를 했다. 밥을 거의 다 먹었을 때쯤 잠에서 깬 엄마가 내 방으로 오셨다. "병원은 잘 다녀오셨어요? 병원에서는 뭐라고 해요?" 하고 물었더니 "나는 잘 모르고 네 아우가 의사랑 얘기했는데 의사가 '다 좋아요' 어쩌고 말하는 소리는 들었던 거 같다."라고 하셨다. 다행이었다. 외가 쪽으로는  암이나 치매 환자가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생김새도 성정도 엄마를 많이 닮았기 때문에 마치 내가 검사를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엄마의 현재는 나의 미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