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으로 시작한 금요일(9.11)
큰일났네
오늘 심사도 한 건 있고
출근도 해야하는데
잠은 멀리 달아난 듯싶고...(새벽 3시)
다행히 새벽녘, 두어 시간을 잘 수 있었다. 6시 30쯤 일어나 방안을 정리하고 미역국을 데워 국물만 마셨다. 엄마는 이미 기상하셔서 몸단장 중이셨다. 간밤에도 부어오른 손가락 마디의 통증 때문에 고생하신 모양이다. 아무것도 안 하시면 가라앉는데, 설거지하거나 반찬을 만드느라 손을 쓰시면 (한마디로 손을 쓰시면) 다시 부어올라 손가락은 마치 개불처럼 변한다. 병원에 가도 특별한 치료법이 없으니 그냥 손을 쓰지 말라는 말만 듣게 된다. 누나와의 관계는 여전히 불편하고 손가락 통증은 예사롭지 않으며 가고 싶은 교회도 갈 수 없으니 엄마의 가을은 잿빛이다. 무엇보다 관계 개선의 의지가 없는 누나가 야속하다. 나중에 엄마가 세상에 없을 때 그 회한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보좌관 사무실에 도착하니 8시, 사무실을 대충 정리한 후, 컴퓨터를 켜고 교육청 내부소통시스템(ice talk)에 로그인했더니 어제(다른 일 때문에 출근하지 않았다)와 오늘 아침, 비서실과 기획조정실에서 보내온, 수신하지 않은 문자들이 알림음을 울리며 일제히 떴다. 대부분 교육감 일정과 공지사항들이었다. 하나하나 확인하며 “감사합니다” 하고 답신을 보냈더니 한 주무관은 “와아, 답장 보내주신 분은 처음이세요.^^ 자상도 하셔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가벼운 인사말 한마디에 그렇듯 감동하는 주무관의 마음이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졌다.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일은 어쩌면 그리 어려운 게 아니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날씨는 맑았다가 흐렸다가 심지어 비가 오기까지..... 전염병으로 어지러운 계절이라서 그런가 날씨도 오락가락 하는구나.
오후 두 시, 재단에 들러 관련 회의(보안이 요구되는 회의라서 내용을 밝힐 수는 없다)를 마치고 돌아오려는데 나봉훈 선배가 "축하해!" 하시며 봉투 하나를 건넸다. "뭐예요?"라고 물었더니 새로운 일을 시작했으니 선배로서 축하해주는 게 당연하게 아니냐며, "동료들과 술 한 잔 해."라며 횡하고 자리를 뜨셨다. 고맙기도 하고 얼떨떨하기도 해서 인사도 못한 채 멍하니 서 있다가 나중에 봉투를 열어보니 5만원 신권 10장이 들어있었다. 너무 과한 금액이기도 하고 제대로 고맙다는 말씀도 못 드려서 곧바로 전화를 드렸더니 "늘 응원하고 있는 거 알지? 나중에 첫 월급 타면 소주 한 잔 하자."라고 말씀하셨다. 마음을 담아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전화를 끊었는데, 가슴속에서 뭔가가 울컥 올라왔다. 도대체 내가 뭐라고.... 생각해 보면 나는 주변으로부터 너무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평생을 갚으며 살아도 모자랄 만큼 많은 사랑을..... 나도 받은 사랑을 나누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하는 순간이었다. 고맙습니다. 선배님. 열심히 할게요.
회의 마치고 돌아오려는데 기획경영본부장인 후배 손이 소주 한 잔 하자고 연락을 해왔다. 결제할 게 있어 잠깐 재단에 들렀다가 갈 테니 먼저 '신포집'에 가 있으라고 했다.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발길을 돌려 신포집에 도착했더니 후배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인천시 문화특보 한 모 교수도 함께 있었다. 오랜만에 낮술을 마시며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눴는데, 본부장으로서의 애로사항과 특정 집단에 대한 원망이 대부분이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화운동 시절의 잊지 못할 경험과 나와의 인연으로 화제가 바뀌었고, 함께 있던 한 교수도 비로소 웃으며 질문도 하고 감탄도 하면서 대화에 참여했다. 역시 술자리에서는 취해야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는 법이다. 6시쯤, 손의 연락을 받고 우리미술관 구 모 관장이 합류했다. 손은 이전부터 자리를 키우는 버릇이 있다. 손과 인하대 문화대학원 동기이기도 한 구 관장에 대해 손은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는데, 나 역시 그 부분(화수동이라는 척박한 마을 상황을 돌파해 우리미술관을 안착시킨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편이다.
신포집을 나와 근처 버텀라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버텀라인은 최근 백년가게로 선정되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장사가 안 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 일행이 도착했을 때도 손님 두 어 명만이 바텐에서 사장인 정선이와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 중에 한 명은 혁재의 전처 선아, 선아는 나를 보자 너무 반가워했다. 시간 날 때마다 이곳에 나와 알바 겸해서 정선이의 일을 도와주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미 취기가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에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버텀라인이 최근 37주년 기념 티셔츠를 제작하여 판매한다기에 후배들의 술값과 티셔츠 값으로 10만 원을 정선이에게 주고 먼저 나왔다. 봉훈이 형이 주신 돈 중 일부였다. 빗물이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