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여름
엄마는 그제 아침저녁으로 복용하는 신경과 약 중 저녁 약 40일 치를 잃어버렸다. 병원에 연락해 8월 중순으로 예약된 진료 일정을 한 달 정도 앞당길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병원 측에서는 그럴 수 없다고 대답을 했고, 결국 나머지 약을 짓기 위한 처방전을 받기 위해 예약 없이 병원을 찾아야 했다. 이미 예약이 모두 차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지만, 특진료 때문이라는 걸 안다. 병원은 병원 나름의 수입 루트가 있는 것일 테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환자 중심이 아니라 병원 중심적 사고만 하는 그들의 행태에 부아가 치밀었다. 아흔이 넘은 노구로 하여금 더운 여름 병원을 찾는 수고를 하게 하다니…… 그렇다고 진료 시간이 긴 것도 아니다. 그저 문진 몇 마디 하고 청진기 가슴에 댔다 떼면 진료는 끝이 난다. 병원에서는 환자가 무조건 을이다. 억울하다면 아프지 말 일이다. 돈은 돈대로 지불하면서 을이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갑을이 역전되는 참 희한한 관계가 의사(병원)와 환자의 관계가 아닌가 싶다.
자신의 불찰 때문인지 약국에서 약을 포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 때문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약이 사라진 이후 엄마는 조금 의기소침해졌다. 깔끔하신 엄마가 청소하는 과정에서 약 봉투까지 쓰레기 봉지에 넣어버렸을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그런 엄마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일부러 목소리의 톤을 높이고 엄마와 함께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크게 웃어주기도 했다. 여느 때라면 잔소리라서 흘려듣던 이야기도 웃으며 묵묵히 들어주었다. 노인의 여름은 더위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라 더위 때문에 예민해진 가족들 때문에 마음을 다쳐 괴롭다. 외로움은 속절없이 배가 되고 대화는 어긋나고 오고 가는 말속에는 예리한 칼날이 숨어 있는 시간, 그 시간을 견디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엄마의 여름을 위해 어린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리고, 가끔은 음식도 만들어달라고 부탁할 생각이다. 후배가 보내준 은행껍질을 벗기는 일도, 그 은행을 넣어 밥을 짓는 일도, 껍질째 담근 마늘장아찌의 껍질을 벗기는 일도, 엄마의 여름 이불을 세탁하는 일도 엄마가 하신다면 묵묵히 지켜볼 생각이다. 하실 수 있는 일을 스스로 하면서 일정한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엄마에게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 더 아이 같아지고 내가 조금 더 수고스럽고 내가 조금 더 부지런해지면 그만큼 엄마의 여름은 '시원한' 시간이 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