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예술가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그녀

달빛사랑 2020. 7. 2. 15:13

 

서은미 사진작가와 만나 경인면옥에서 냉면을 먹었다. 70년 전통을 자랑하는 경인면옥은 10년 전쯤 선배와 두어 차례 들렀을 뿐 최근에는 간 적이 없다. 여전히 식당은 문전성시였다. 11시 30분에 약속을 해서 다행히 붐비지 않을 때 주문할 수 있었다. 냉면 맛은 무척 담백했다. 오리지널 평양냉면을 많이 먹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도 육수 맛이 너무 밍밍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옹진냉면이나 사곳냉면에 비해 확실히 싱겁긴 했는데, 내 입맛에는 괜찮았다. 하긴 분식집 스프 냉면도 그 나름의 맛이 있다며 별 타박 없이 먹는 게 나다. 나는 맛의 차이를 따지기 보다 냉면 그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인 게 틀림없다.


 

냉면집에서 나와 유창호 작가의 사진전을 구경하러 함께 ‘서담재’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서 작가는 얼마 전 그녀가 발행하려는 강화 화문석 관련 책자 서문을 써준 사례라면서 봉투 하나를 건넸다. 다소 머쓱해 하며 “저는 전업 글쟁이라서 주시면 받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녀는 “당연히 받으셔야지요. 제가 오히려 고맙지요.”라며 사람 좋게 웃었다. 시인으로서 대우를 받는 느낌이었다. 그 말과 웃음이 무척 고마웠다. 자신도 예술가로서 많은 사람과 협업을 해왔던 터라서 상대 예술가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심전심이라고나 할까. 집에 와서 봉투를 열어보니, 생각보다 많은 금액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문자를 서 작가에게 보냈다.

 

“서 작가님, 문학예술가로서 대우받는 느낌을 주셔서 고맙긴 하지만…… 사례비를 너무 많이 주셨어요. 일부 돌려드리고 싶지만, 안 받으실 게 뻔하니, 미리 적립해 놓았다고 생각하시고 부탁하실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세요.”

 

당연히 서 작가는 “아니에요.”로 시작하는 답장을 보내왔지만, 고맙고도 미안한 묘한 감정 상태가 된 것은 사실이다. 예술가의 작업을 (그것이 글이든 사진이든 혹은 그림이든) 정당하게 평가하고 그에 상응하는 사례를 지급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요즘 지역 예술판의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서 작가의 마음을 살뜰하게 느꼈던 건지도 모르겠다. 면식이 있는 상당수의 중견 예술가들조차 협업 과정에서 은연중에 모종의 배려나 양보, 재능기부를 바란다거나 정산조차 더디게 해주어 불편한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서 작가는 일단 일 처리가 깔끔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도탑다. 이런 파트너를 만나 함께 일을 하면 보람도 크고, 무엇보다 즐겁고 재밌다. 상대의 마음 씀씀이에 갚할 수 있는 좋은 글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유창호 작가의 사진은 이미 이전 전시를 통해 만났던 것들이다. 그런데도 전시회는 성황을 이루었다. 일단 사진이 좋고 또한 작가의 사람 됨됨이가 착하고 성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유창호는 내가 알고 있는 작가 중 인물 사진을 최고로 잘 찍는다는 게 내 판단이다. 아마추어 감상자의 즉자적인 느낌이거나 취향의 문제겠지만, 나는 그렇다. 동료 작가들도 내 말을 대체로 수긍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