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되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비가 내렸다. 간간이 맑은 하늘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이내 다시 하늘은 비를 뿌렸다. 기온도 크게 내려가 에어컨을 켜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비 내리고 시원하니 살 것 같았다. 비 내리는 날이면 도로가 보이는 2층 테라스에 앉아 온종일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곤 했다. 색색의 우산들이 서로 다른 보폭으로 길 위를 떠다니는 장마의 풍경들이 얼마나 좋은지……. 정차된 차 밑에서 비를 피하며 하품을 하던 고양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면 무척 기분이 좋아진다. 가끔 손님 없는 상점의 주인들이 문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거나 멍하지 창밖을 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기도 한다. 확실히 눈높이에서 본 풍경과 사물보다 내려다 보는 그것들이 훨씬 서정적이다.
얼마 전 심사를 봤던 글쓰기대회 심사비가 입금되었다. 이제껏 받아본 적이 없는 큰 액수였다. 하룻밤을 꼬박 새우며 꼼꼼하고 성의 있게 글을 살펴본 건 사실이지만 예상치 못했던 큰 액수의 심사비를 받고 보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 노동의 가치는 그만큼의 환금성을 가지고 있는 걸까.’를 되물어보았다. 폐지 줍는 노인들이나 뙤약볕 아래서 고된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에 비해 내 노동은 사실 훨씬 수월하고 시간도 적게 든다. 하지만 보수는 내가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더 받는다. 과연 이것이 정당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성실하고 치열하게 감당하리라는 다짐을 새삼 하게 된 것도 아마 그러한 의문, 미안함에 대한 반작용이었을 것이다. 심사비는 편당 2만 원씩을 책정했던 모양이다. 지난번에 심사했던 작품 수는 모두 42편이었다.
원고료도 입금되고 해서, 입맛 없는 엄마 드시라고 소고기죽, 전복죽, 야채죽, 호박죽 등 각종 죽류 40여 개, 커피믹스 160개들이 한 박스와 종량제 봉투, 사골국물 등도 넉넉하게 사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