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여름을 날까
나는 냉면을 무척 좋아한다. 열이 많아서 그런 것인지 냉면 특유의 풍미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리고 처음 냉면을 먹은 것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냉면을 너무 좋아해 사계절 내내 먹는다. 한겨울에 냉면을 먹고 있는 나를 보며 엄마는 얼굴을 찡그리며 “아이고, 이 겨울에 그 찬 걸……” 하시지만, 사실 겨울에 먹는 냉면은 그 나름의 풍미가 있다. 물론 냉면은 여름 음식이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난 후 살짝 살얼음이 언 육수에 오이와 사과, 신김치를 썰어 넣은 냉면을 먹는 일은 여름이 죽기보다 싫은 내가 그나마 이 계절에 누릴 수 있는 큰 즐거움이다.
인천에는 정통 냉면집이 서너 군데 있다. 맛있기로 소문난 옹진면옥을 비롯해서 사곳냉면, 평양면옥 그리고 우리 동네에 있는 백령면옥 등인데 각각의 식당마다 독특한 맛이 있다. 백령면옥에서는 육수에 넣으라고 액젓을 주는데, 비리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적당히 넣어 먹으면 맛이 정말 기막히다.
나는 평양식 물냉면을 좋아하는데, 냉면을 먹고 싶을 때마다 식당에 가서 먹는 건 아니다. 요즘에는 시중에 냉면 육수가 다양하게 나와 있어 그것을 사다가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면은 메밀 냉면 사리를 사다 먹기도 하지만, 일반 국수나 찌개에 넣는 사리면을 대신 사용하기도 한다. 그럴 경우, (찬 육수에 면을 넣으면 다 한자의 의미대로 냉면(冷麪)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냉면이라기보다 냉국수라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내가 직접 만들어 먹을 때, 나는 오이를 무척 많이 썰어 넣는다. 한 개를 다 넣을 때도 있고 최소한 반 개 이상은 넣는다. 거기다 (있으면) 사과나 수박, 토마토, 키위 등을 썰어 넣고 신김치가 있으면 신김치를 송송 썰어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어 조물조물한 후 다대기처럼 넣어 먹는다. 그럼 웬만한 식당의 냉면이나 냉국수보다 훨씬 맛있다. 콩국수도 육수 대신 콩 국물을 사용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 만들어 먹는 과정은 비슷하다. 동서식품에서 큰 우유갑 크기의 950㎖ 콩국물을 이천오백 원에 판매하고 있는데, 그거 한 팩이면 두세 그릇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냉면 육수는 풀무원 것과 중소기업 것이 있는데, 풀무원 육수는 맛도 밍밍하고 가격이 비싸서 주로 중소기업 제품을 사다 먹는다. 제조과정의 위생적인 면을 따진다면 풀무원이 믿을 수 있겠지만, 이름 있는 마트에 팔리는 제품이라면 어느 정도 검증된 것이라는 생각에서 중고기업 제품을 믿고 선택하는 것이다. 한 봉지에 550원 정도한다. 나는 오이를 비롯해서 과일 등속을 많이 넣기 때문에 한 봉지 반 정도를 넣어야만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은 냉면이 된다. 반 남은 육수는 냉동실에 얼려 두었다가 다음에 먹을 때 얼음 대신 육수에 넣어 먹는다. 가끔 엄마가 열무김치를 담그면 열무김칫국물에 말아먹기도 한다.
물론 나는 정통 냉면집만 찾아다닌 게 아니다. 대학시절과 총각시절에는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집도 자주 찾았다. 화평동 냉면은 일단 양에서 손님들의 기를 죽인다. 오죽하면 국물까지 다 먹으면 한 그릇을 서비스로 준다는 집도 있었을까. 여성 손님들은 대체로 반은 남기곤 하는데, 그때마다 ‘저건 낭비가 아닐까’ 안타깝게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한창 먹성이 좋을 때인 나와 친구들은 말 그대로 세숫대야처럼 큰 냉면 그릇에 나온 냉면을 남긴 적이 한 번도 없다. 요즘에는 버려지는 음식 쓰레기를 생각해서 화평동 냉면도 양을 ‘현실화’시켰다고 한다. 동인천에 들를 일이 있으면 한 번 찾아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