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꿈을 꾸다 ㅣ새벽 2시의 벽

달빛사랑 2020. 6. 2. 20:32

 

 

 

새벽 두 시의 벽은 흐물흐물 흘러내린다. 점액질로 변한다. 끈적한 젤리가 묻은 팔 하나가 불쑥 벽 속에서 나온다. 뒤를 이어 머리가 나오고 무릎이 나오고 발이 빠져나온다. 한쪽 발에서 양말이 벗겨진다. 고구마 맛탕 같다. 양말은 벽에 붙은 채 느린 속도로 미끄러져 내린다. 빠져나온 머리는 기역 자(字)로 꺾이며 잠든 나를 한참 동안 내려다본다. 방향을 바꿔가며 내려다본다. 그렇게 한동안 내 주위를 유영하듯 빙빙 돌던 머리와 팔과 다리는 어둠이 옅어지자 비로소 뽀송해진 머리를 쓰다듬으며 벽 속으로 들어간다. 가끔 돌아가는 머리와 팔과 다리를 따라 나도 벽 속으로 들어간다. 벽에 머리를 넣는 순간 기억을 잃는다. 꿈속에서 다시 꿈을 꾼다. 나의 스물이 깔깔거리며 웃는다. 서른이 어깨를 다독인다. 마흔이 담배를 피워물며 술을 권한다. 쉰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고마워!” 인사하며 눈물을 흘린다. 벽에서 나왔을 때 그렇고 그런 하루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