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빛과 소금의 역할

달빛사랑 2020. 5. 14. 16:31

다행히 엄마는 어젯밤 방에 들어가셔서 자신의 ‘비밀금고’를 열어 보시고 생각보다 만 원짜리가 많아진 걸 확인하셨던 모양이다. 함께 다시 찾아보자는 나의 제안에 “그럴 거 뭐 있냐. 됐어.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하시며 한 발 빼는 듯한 태도를 보이셨다.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꾹 참았다. 완전히 의구심을 떨쳐버린 것인지 자신의 ‘비밀금고’의 규모가 밝혀지는 것을 저어하셨던 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제 벌어졌던 상황의 심각성에 비춰볼 때 너무 싱거운 결말이었다. 나 역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아침에는 미역국이나 끓여야겠어요.” 하고 주방으로 가서 아침 준비를 했다. 부부싸움만 칼로 물 베기가 아닌 모양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 마태복음5:13~15

 

요즘, 사람들과 만나고, 도모하고, 부딪치고, 이해하고, 가끔 용서하()고 자주 반성하며 생각하는 성경 구절이다생각해 보니 내 모교 제물포고등학교의 교훈인 “학식은 사회의 등불, 양심은 민족의 소금”에도 빛과 소금의 역할이 나온다. 학식으로 사회의 긍정적 발전을 도모하고 양심을 통해 민족의 도덕적 일탈을 경계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아나키스트였던 초대 교장 길영희 선생의 선각자적 고민이 반영된 교훈이다. 그래서 고교 3년 내내 우리는 무감독 고사를 치렀다. 그것은 성적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이 취할 수 있는 매우 적극적인 의미의 양심 실천 운동이었다. 그 멋진 전통이 성적지상주의가 만연한 오늘날까지 깨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니, 동문으로서 무척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