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다정도 병이구나

달빛사랑 2020. 4. 7. 20:37

梨花(이화)에 月白(월백)하고 銀漢(은한)이 三更(삼경)인 제

一枝春心(일지춘심)을 子規(자규)ㅣ야 알랴마는

多情(다정)도 病(병)인 냥하여  잠못드러 하노라 | 이조년

 

배꽃 위로 달빛은 더욱 환하고
은하수는 흘러 한밤중인데
꽃가지 하나하나에 서린 봄의 마음을
어찌 안다고 두견새는 이 밤 저리도 슬피 우는 것인지
정 많은 것이 병인 것은 틀림없구나
나 역시 잠 못 들고 밤새 이처럼 뒤척이는 것을 보니....[주관적인 의역]


희한한 정도로 봄날의 지분거림을 잘 참아내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공포는 그것대로 하나의 강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억제할 수가 없어 즉흥적인 외유를 시도하곤 한다. 뭐 솔직히 말하면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라기보다는 술에 대한 갈망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긴 하지만……. 집에서 술을 마시는 술꾼들도 제법 있는 것으로 아는데, 나는 집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반주로 소주 반 병 정도를 마시는 일은 있지만 취기가 올 정도로 마신 적은 거의 없다. 술은 외부에서, 지인들과 마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오래 전부터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습관적으로 갈매기에 들르게 된다. 물론 요즘에는 혁재도 갈매기에 자주 ‘결석’하고 조구 형을 만난다는 보장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그곳에는 내가 원하는 (종류의) 술이 있고 길들여진 의자처럼 공간이 낯설지가 않기 때문이다. 어제만 해도 (물론 회의가 있긴 했지만) 돌아가는 길에 갈매기에 들렀고 혁재를 만나 반가웠지만 혁재는 이내 부평으로 애인을 만나러 간다며 일찍 일어섰다. 요즘엔 혼자서 마시다보니 혹시 누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주도 없이 많은 술을 마신다. 두 병이 정량이었는데 많을 경우 4병까지 마시는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많이 취하는 것도 아니다. 단시간에 집약적으로 마시지 않고 서너 시간에 걸쳐 천천히, 사람 구경을 하면서 마시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튼 3병 정도를 마시고 일어나려 할 때쯤 동렬 형과 후배 찬영이가 들어와 한 병 정도를 더 마셨다. 어제는 양으로는 도합 4병을 마신 셈인데, 갈매기 사장이 옆에 앉아 대작하기 때문에 내가 온전히 그것을 다 마신 건 아닐 것이다. 아무튼 봄은 현재 처처에서 지극하고 술꾼의 목마름과 시인의 허허로움은 전염병의 공세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꽃비를 기꺼이 맞고자 하니 다정(多情)이 병인 것은 분명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