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관계의 상대성
달빛사랑
2020. 2. 27. 23:47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그런 상황을 실제로 만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훅 하고 들어온 후배의 진심 때문에 적잖게 당황했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 이미 무너진 마음으로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조언 아닌 조언을 하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다. 인간관계, 참 어렵다. 마음의 무게가 대등하지 않을 경우, 어긋난 관계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박 선배가 또 단골술집 갈매기에 술값을 선(先)결제 해놨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도 늘 내 술값을 미리 지불해 놓는 선배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나 역시 대개는 후배들의 술값을 대신 계산해주었지만 그것이 늘 흔쾌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의무감으로 계산해 줬던 적이 많았던 것 같은데, 물론 그 의무 아닌 의무를 감당했을 때 반사적으로 돌아오는 자족감은 물론이요, 인간관계에서 제법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평을 덤으로 얻게 되니 손해만 보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과도한 지출을 하고 나서 갖게 되는 불편한 마음은 대체로 그런 식으로 퉁치곤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배포 있는 선배의 모습은 아닌 듯 싶다. 하지만 할 수 없다. 지금의 형편으로는 배포 있는 소비와 지출은 언감생심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종류의 배려를 만나게 될 때마다 나 역시 좋은 후배, 믿음직한 선배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은 잊지 않고 하는 편이다. 물론, 말처럼 쉽진 않아 말뿐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